검찰 개혁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갈등이 도를 넘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여당 의원과 현직 공무원이 공개적으로 맞서고, 상대를 ‘밀정’ ‘나치 전범’에 빗대는 인신공격까지 등장했다. 정권 초기부터 국정의 중심에 서야 할 여권이 권력 다툼에 매몰된 모습이다. 정작 검찰 개혁의 명분이었던 국민의 안전과 권리 보호는 논쟁에서 사라졌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김지용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 인선에 반대하며 “이재명 정부도 잠깐 흘러가는 한 페이지일 뿐”이라고 주장한 게 그렇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김지용 후보자를 ‘밀정’과 ‘나치 전범’에 비유하기도 했다. 검찰 개혁은 특정 세력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수사기관의 권한을 어떻게 통제하고, 범죄로부터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며,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그런데 지금 여권의 논쟁에서는 제도 개편의 실효성보다 누가 인사를 주도하고 누가 누구를 견제하느냐가 더 크게 부각된다. 대통령은 내부 공격을 문제 삼고, 강경파는 대통령이 검사 출신을 중용해 반대파를 겨냥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어느 쪽도 국민에게 개혁의 성과와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수사기관 개편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내려온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중동 전쟁에 따른 비용 상승과 견조한 수요가 맞물리면서 물가 압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판단이다. 물가 안정이 늦어지면 서민의 실질소득은 줄고 경제 불확실성은 커진다. 한은이 섣불리 긴축의 고삐를 풀어선 안 되는 이유다. 단 환율을 통화정책만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여겨선 안 된다. 물가와 성장, 금융안정을 함께 살피며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긴축의 부담을 취약계층에 떠넘기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저소득층은 소득에서 식료품과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물가 상승에 특히 취약하다. 한은이 물가 안정에 집중하는 동안 정부는 재정과 채무 조정 등을 통해 취약 차주를 선별 지원해야 한다.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돈을 풀면서 물가를 잡으라고 한은에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금융 불균형도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문제가 커진 뒤 뒤늦게 대응하면 경제가 치러야 할 대가는 더 커진다. 금리 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을 함께 운용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원칙을 흔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물가 안정은 중앙은행만의 과제가 아니다. 한은은 정치적
국무위원의 말은 사적인 의견이 아니다. 국가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상대국의 선전 도구로도 쓰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최근 발언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북한의 도발 앞에서 책임을 명확히 묻기는커녕 모호한 표현으로 논란을 키웠다. 그 결과 북한은 정동영 장관의 말을 인용해 책임을 회피하고 나섰다. 대화와 평화를 앞세운 정책이 오히려 북한에 이용당하는 것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일 유엔에서 벌어진 일이 단적인 사례다. 차지훈 주유엔 대사는 유엔총회에서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이 북한군의 의도적 매설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정전협정 위반을 규탄하며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그런데 북한 대표는 정동영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해당 사건을 북한의 고의적 공격으로 특정하기 어렵다고 한 발언을 끌어와 반박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장도 정 장관의 발언을 인용하며 북한의 책임을 부인했다. 우리 장병들이 지뢰 폭발로 다친 엄중한 사안 앞에서 통일부 장관이 내놓은 발언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남북 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대화를 위해 사실과 책임까지 흐려서는 안 된다. 북한이 정동영 장관의 대화 제의를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망상”이라고
캐나다 시인이자 고전학자 앤 카슨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고전 전통과 유희적인 대화를 나누며 현대 문학에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낸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정 이유로 꼽았다. 카슨 문학의 출발점은 고전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을 연구한 그는 사포의 시와 그리스 비극, 고대 철학의 문장을 오늘날의 사랑과 상실, 욕망과 고독 속으로 끌어들였다. ‘빨강의 자서전’에서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을 현대의 상처받은 소년으로 되살렸고, ‘남편의 아름다움’에서는 결혼의 붕괴를 독특한 시 형식으로 풀어냈다. 앤 카슨의 문학이 특별한 것은 단순히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데 있지 않다. 시와 소설, 에세이와 번역, 희곡의 경계를 허물며 기존 장르의 틀 자체에 질문을 던졌다. 오래된 이야기를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고 오늘의 언어와 감각으로 다시 읽어 새로운 문학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번 수상은 고전의 가치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새로운 문학이 반드시 새로운 소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텍스트라도 어떻게 읽고 무엇을 질문하느냐에 따라 현재형의 작품이 될 수 있다. 연구와 창작을 함께 이어온 카슨의 이력은 지식이 예술의 상상
정부가 한국형 녹색 대전환(K-GX)에 대규모 재정·금융 지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향후 10년간 재정 200조원을 투입하고 5대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790조원의 기후금융을 공급하는 한편 민간에서도 220조원 규모의 시그니처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재정과 금융을 합치면 10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녹색 전환에 투입되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7일 K-GX 전략 국민 보고회에서 “녹색 대전환을 첨단산업의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전제로 규정하고 핵심 녹색 기술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탄소 국경세와 글로벌 공급망의 탄소 감축 요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탄소 경쟁력이 곧 수출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향 자체는 타당하다. 단 경제정책의 관점에서는 투자 규모보다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고 어떤 수익을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녹색 전환이라는 명분 아래 정책금융이 공급된다고 해서 산업 경쟁력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 지원이 시장성이 낮은 사업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경쟁력 없는 기업을 연명시키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면 막대한 재정과 금융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소진될 수 있다. 결국 K-GX의 성패는 정부가 민간의 투자 판단을
은행권을 겨냥한 해킹이 잇따르고 있다. 신한은행에 이어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서도 고객정보 유출이 확인됐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도 외부 해킹 시도가 있었고, BNK부산은행에서는 외주 개발인력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금융당국이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전 금융권 보안 점검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이번 사태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해커들이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 같은 고객 거래 시스템만 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서는 직원용 업무지원 시스템과 영업지원시스템이 공격 대상이 됐다. 단 은행들은 고객의 금융거래 정보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한은행에서 약 2만5000명, KB국민은행에서 119명, 하나은행에서 89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이름과 연락처,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은 금융거래 정보가 아니더라도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정보다. 무엇보다 여러 은행에서 비슷한 시기에 공격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가볍게 볼 수 없다. 특정 은행의 개별 사고를 넘어 금융권의 업무시스템이 새로운 공격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금융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사고가 발생한
한국조폐공사가 창립 75주년을 맞았다. 75년이라는 시간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조폐공사가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선언했느냐다. 현금 사용 감소로 화폐 제조라는 전통적 주력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조폐공사는 정보통신기술(ICT), 문화, 수출사업으로 외연을 넓히며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성창훈 사장이 있다. 그는 조폐공사가 자칫 ‘제2의 석탄공사’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조직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기존 역할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공공기관 혁신의 출발은 바로 이런 냉정한 자기 진단이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진단 이후의 행동이다. 조폐공사는 모바일 신분증과 디지털 상품권 등으로 ICT 사업을 확대했다. 화폐의 위변조를 막으며 쌓아온 기술을 디지털 환경의 신원·진위 확인 영역으로 확장했고, 화폐 제조 과정에서 축적한 디자인 역량은 문화상품으로 연결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축적한 기술과 전문성을 시대의 수요에 맞게 다시 해석한 것이다. 성창훈 사장의 리더십을 평가할 때 주목해야 할 대목도 여기에 있다. 혁신을 구호로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실물 금 매입을 재개한다. 이르면 오는 12월 국내에서 생산된 금 1톤 안팎을 사들일 예정이다. 시장가치로 약 2000억원 규모다. 올해 2분기 금 상장지수펀드(ETF)를 2억5000만달러어치 매입한 데 이어 실물 금까지 확보하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늦었지만 필요한 방향 전환이다. 국제 금융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의 자산 구성을 다변화하고 안전자산인 금 보유를 늘리는 것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특히 한국은행의 금 보유 규모가 주요국 중앙은행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 8월 말 기준 한은의 금 현물 보유량은 104.4톤이다. 장부가 기준으로 전체 외환보유액의 1.1%, 시가 기준으로도 3.4% 수준이다. 세계금협회 최신 자료에서 한은의 금 보유 순위는 전 세계 39위에 그친다. 물론 금 보유량의 순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환보유액 가운데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면 외환보유액 포트폴리오의 다변화라는 측면에서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 특히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고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환경이라면 금의 역할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더 주목할 것은
영화는 허구를 만들 자유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 비극을 소재로 삼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상력을 펼칠 자유가 있는 만큼,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분명히 설명할 책임도 커진다. 특히 한 시대의 역사를 뒤흔든 사건을 다루면서 실재 인물과 실제 사건을 등장시켰다면 더욱 그렇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닌 이유다. 야권에서는 이 영화가 육 여사 서거 사건의 배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며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제작진은 특정한 역사적 결론을 새롭게 확정하거나 기존 사실을 부정·왜곡하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감독 역시 영화가 중앙정보부의 권력 암투를 뜻한 것일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결론을 확정한 것이 아니다”라는 해명만으로 관객이 받아들인 인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역사책과 다르다. 관객은 법정 기록이나 사료를 읽듯 장면 하나하나를 검증하면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과 등장인물의 관계, 극적인 설정을 통해 사건을 이해한다. 그렇다면 실존 인물과 실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지뢰 추정 폭발사고를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장병이 폭발하지 않은 지뢰 1발을 추가로 봤다는 취지의 진술이 나온 데 이어, 그 물체가 북한군이 사용하는 목함지뢰와 유사했다는 증언도 제기됐다. 그러나 군은 아직 지뢰의 종류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장병의 증언이 서로 달라 목격된 물체가 동일한 것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신중한 조사 자체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군이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왜 사고가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군은 무엇을 파악하고 있었느냐다. 이번 사고의 진상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추측이 아니라 물적 증거다. 미폭발 지뢰를 실제로 찾아 수거할 수 있는지, 폭발한 지뢰의 잔해와 부상자에게서 나온 파편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군과 유엔군사령부가 사고 엿새 만에 현장조사에 들어갔지만 아직 폭발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DMZ는 일반적인 조사 현장이 아니다. 접근 자체가 위험하고, 조사 과정에서 또 다른 지뢰를 만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고 직후부터 현장 증거를 어떻게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