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3일 내년도 예산을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 이상으로 편성하고 반도체 호황에 따른 추가 세수를 활용해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미래·청년·지방·교육 등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방향성 자체는 공감할 만하다. 인공지능(AI)과 첨단산업 경쟁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를 미룰 수는 없다. 단 재정은 의지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과 새로운 기금을 추진할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투자의 명분이 아니라 재원의 지속 가능성과 집행의 효율성이다. 정부는 장기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 호황이 가져올 초과 세수를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투입하겠다는 발상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추가 세수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이다. 호황기에는 막대한 세수를 안기지만, 불황기에는 세수 감소 폭도 크다. 일시적인 호황을 전제로 새로운 재정사업을 확대할 경우 향후 경기 변동에 따라 재정 운영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산 규모가 올해보다 10% 이상 늘어난
SK하이닉스가 미국 나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통해 약 40조 원을 조달하며 외국 기업의 미국 기업공개(IPO) 역사상 최대 기록을 세운 것은 단순한 자금 조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를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넘어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공모가가 기존 국내 주가보다 2.9% 높은 가격에 결정됐다는 점이다. 대규모 IPO에서는 통상 투자자 유인을 위해 할인 발행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오히려 '프리미엄 프라이싱'에 성공했다. 여기에 수요예측에서 공모 물량의 7배가 넘는 주문이 몰렸다는 사실은 글로벌 자본시장이 SK하이닉스의 미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SK하이닉스는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상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세계 기술 경쟁에서 여전히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 금융시장에서 다시 한번 입증한 사례다. 현재 반도체 산업은 그
은행권 가계대출이 다시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은 전월보다 7조6000억원 증가하며 1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수도권 주택 거래 회복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확대와 증시 활황에 따른 신용대출 증가가 동시에 나타난 결과다. 부동산과 금융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운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급증한 이후 시차를 두고 대출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전형적인 흐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계약된 주택의 잔금과 중도금 수요까지 반영되면 당분간 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가계부채는 한 번 불어나기 시작하면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 신용대출 증가도 눈여겨봐야 한다. 개인 투자자들의 이른바 ‘빚투’가 다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경우 가계의 상환 부담이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주식시장이 상승할 때는 투자 확대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과도한 레버리지는 결국 개인과 금융시스템 모두에 부담으로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다시 무력 충돌을 벌였다. 전면전은 피했지만 평화는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보복의 악순환이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국제 질서와 항행의 자유를 둘러싼 충돌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다. 미국은 호르무즈가 국제법상 자유로운 항행이 보장된 국제수로이며 특정 국가가 선박의 항로를 일방적으로 통제할 권한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이란이 상선을 공격하고 자국이 지정한 항로 이용을 강요한 것은 휴전 합의는 물론 국제사회의 항행 질서를 훼손한 행위라고 판단해 군사 대응에 나섰다. 미국의 이러한 인식은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명분을 갖는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천연가스 수송의 핵심 통로다. 이곳의 항행이 특정 국가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제한되기 시작한다면 에너지 시장은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국제사회가 호르무즈의 '항행의 자유'를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종전 MOU가 이러한 핵심 쟁점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안전한
청각장애인의 명의를 빌려 아파트 특별공급을 불법으로 받아낸 브로커 조직이 적발됐다. 서울 강남 등을 포함해 분양받은 아파트만 30채, 분양가 기준 20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마련된 제도가 투기와 범죄의 통로로 악용된 것이다. 정부가 이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규정하고 특별공급 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과 개선을 주문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이번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단순한 부동산 비리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범죄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일부 청각장애인은 계약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명의를 빌려줬거나 이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의 허점을 노린 브로커와 이를 이용한 투기 세력은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까지 무너뜨렸다. 특별공급 제도는 시장 논리만으로는 보호받기 어려운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신혼부부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존재한다. 일부 범죄 때문에 제도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제도가 본래 목적대로 작동하도록 관리 체계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우선 명의 대여와 대리 계약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대폭 강화해
오는 7일 시행되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허위·조작정보와 혐오·차별 표현에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온라인 공간의 무분별한 허위정보 유통과 악의적 혐오 표현을 줄여야 한다는 목표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이번 개정법은 시행 전부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법 적용 범위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허위·조작정보’와 ‘혐오·차별 선동 정보’라는 개념은 현실에서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무엇이 허위인지, 어떤 표현이 혐오를 '심각하게 조장'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사회적·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법은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고 일정 요건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도입했다. 표현의 적법성에 대한 기준이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재만 앞세운 셈이다. 더욱이 법 조문은 적용 대상을 언론사나 플랫폼 사업자에 한정하지 않는다. 일반 국민도 게시글을 올리거나 콘텐츠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설령 최종적으로 법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더라
서울 강남 재건축의 상징인 압구정2구역이 사업시행계획을 위한 통합심의를 처음 통과했다. 압구정 2·3·4·5구역 가운데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잠실주공5단지와 은마아파트에 이어 압구정까지 본격적인 사업 궤도에 오르면서 서울의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수년간 지연됐던 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노후 주거단지의 안전 문제와 주거환경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재건축이 지연될수록 주민들의 불편은 커지고 도시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적정한 절차를 거쳐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압구정2구역은 최고 66층 규모의 한강변 주거단지로 조성되며, 공공보행통로와 입체보행교, 공원, 개방형 커뮤니티시설 등을 함께 계획하고 있다. 과거 재건축이 단순히 아파트를 새로 짓는 사업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도시공간과 공공성을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한강 접근성을 높이고 시민에게 열린 공간을 확대하려는 시도 역시 도시의 공공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단 속도만을 강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이 최종 선정되면서 수년간 이어진 사업의 불확실성이 마침내 해소됐다. 두 조선사의 치열한 경쟁과 법적·행정적 공방으로 지연됐던 국가 핵심 방위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KDDX는 단순한 함정 건조 사업이 아니다. 총사업비 7조8000억원이 투입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상함 사업이자, 우리 기술로 6000톤급 첨단 구축함을 완성하는 해양 방위력 강화 프로젝트다. 동시에 한국 조선·방산 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세계 시장에 입증할 수 있는 전략 사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번 사업은 국내 방산 생태계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과정에서는 수많은 협력업체와 기자재 기업, 첨단 전자·통신·무기체계 기업들이 함께 참여한다. 대형 조선사 한 곳의 수주를 넘어 국내 방산 공급망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글로벌 방산 시장은 유례없는 성장기를 맞고 있다. 각국이 해군 전력을 확대하면서 첨단 구축함과 호위함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잠수함과 호위함 수출에서 경쟁력을 입증했지만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재생에너지 정책과 국정 운영, 국민통합을 주제로 의견을 나눈 것은 정치적 의미를 넘어선 상징성을 지닌다. 전·현직 대통령이 국정 현안을 놓고 경험과 비전을 공유하는 모습은 정치적 대립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긍정적인 장면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재생에너지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한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산업 전략과 에너지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어느 정부에서 시작했든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RE100 등 글로벌 산업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정책의 지속성은 경쟁력 그 자체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재명 정부의 외교와 경제 성과를 평가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전 정부의 정책 기반을 인정한 모습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치권에서는 전임 정부의 성과를 부정하거나 모든 공을 현 정부에 돌리는 일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국정은 특정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의 연속된 역사다. 전임 정부의 성과를 인정하고 미흡한 부분은 보완하는 자세가 성숙한 민주주의의
이번 국토교통부의 경기 화성 동탄구, 용인 기흥구, 구리시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 지정은 뒤늦었지만 불가피한 조치다. 반도체 산업 기대감, GTX 등 교통 인프라 확충, 서울 접근성이라는 요인이 결합되면서 해당 지역의 집값은 단기간에 과열 양상을 보여왔다. 시장이 이미 기대심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면, 정책 당국의 개입 역시 속도감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대응은 방향성 자체는 타당하다. 특히 화성시 동탄구와 용인시 기흥구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기대감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지역 과열로만 보기 어렵다. 산업정책과 주택시장이 맞물릴 경우 가격 신호는 훨씬 빠르고 크게 왜곡될 수 있다. 여기에 구리시처럼 서울과의 거리와 역세권 수요가 결합된 지역까지 동반 상승하면서, 수도권 전반의 불안정성이 다시 고개를 든 상황이다. 단 규제지역 지정만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과거에도 투기과열지구 확대는 단기적으로 거래를 위축시키는 효과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으면 가격은 다른 형태로 재상승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특히 이번처럼 산업 입지 변화와 교통망 확충이 동반된 지역에서는 규제의 효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