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문화 특집] 전미경 ‘미운 남자’…광고·팬덤 無, 조용히 커진 노래

전미경의 ‘미운 남자’, 가요무대서 시작된 진짜 히트의 힘

시사1 김아름 기자 | 지난해 초 KBS ‘가요무대’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한 무대가 묘하게 오래 남고 있다. 화려한 홍보도, 집중적인 마케팅도 없었다. 종합편성채널 트롯 프로그램 출연도 없었고, 노래방 반주기에도 아직 실리지 않은 노래였다.

 

바로 전미경이 부른 트롯곡 ‘미운 남자’는 방송 이후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조회수가 꾸준히 증가하며, 가요무대 유튜브 공개 신곡 기준으로는 작년 최고 수준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어느새 조회수 16만회를 넘어 ‘20만’을 향해 가고 있다.

 

‘폭발적 인기’라기보다는 멈추지 않는 상승이 더 어울리는 흐름이다. 눈에 띄는 건 속도가 아닌 지속성이다. 짧은 기간 몰아친 관심이 아니라, 하루하루 조금씩 쌓이며 만들어진 숫자다. 이른바 ‘바이럴 공식’과는 다른 결의 성과다.

 

◆ 팬덤 없이도, 사람들은 왜 다시 찾았나 = ‘미운 남자’ 유튜브 지표를 보면 흥미로운 특징이 드러난다. 조회수에 비해 ‘좋아요’ 수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이는 열성 팬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결과가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의 자연스러운 재시청과 공유가 누적된 결과로 해석된다.

 

‘가요무대’라는 프로그램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중장년층 시청자, 실제 삶의 서사에 반응하는 세대, 그리고 노래를 소비가 아닌 기억과 감정의 매개로 받아들이는 층이다.

 

‘미운 남자’는 그 지점에서 정확히 멈춘다. 광화문 포장마차, 강남대로의 빗길, 말없이 곁을 지키는 남자의 모습. 자극적 서사도, 과도한 설명도 없다. 단 “그런 사람이 있었지”라는 개인의 기억을 조용히 건드린다. 이 공감이, 추천 알고리즘보다 먼저 사람을 움직였다.

 

◆ 전미경, 가수·작사가·기획자로서의 진정성 = ‘미운 남자’가 오래 남는 또 다른 이유는 전미경 자신이 작사와 기획, 노래까지 모두 직접 맡았다는 점이다. 트롯 시장에서 이는 흔치 않은 구조다.

 

노래를 ‘받아 부르는’ 방식이 아니라, 삶에서 길어 올린 감정을 스스로 책임지고 무대에 올린 형태다. 무대 위 전미경의 표정에는 과시도, 설명도 없다. 노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보다 이미 살아본 이야기처럼 흘러간다.

 

이 진정성 덕분에 작곡가 안수 또한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곡가는 아니지만, ‘미운 남자’ 덕분에 주목받는 작곡가 반열에 오르게 됐다.

대형 기획 없이, 노래 자체의 설득력이 만든 변화였다.

 

◆ 노래방에도 없고, 방송 노출도 적은데…조용한 히트 = 현재 ‘미운 남자’는 주요 노래반주기(태진·금영 등)에 아직 수록되지 않았고, 지상파 가요무대 1회 출연 외에는 종합편성채널 노출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조회수는 꾸준히 상승 중이다. 이는 트롯 시장에서 매우 이례적인 흐름이다.

 

노출이 많아서가 아니라, 노출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노래가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업계에서는 만약 향후 노래방 반주기나 방송 무대에 더 자주 등장할 경우, 현재의 완만한 상승 곡선은 훨씬 가파른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미 기초 체력과 대중 검증을 마친 노래이기 때문이다.

 

◆ 약자도 노래로 증명할 수 있다 = 전미경은 오래전부터 덜 알려진 가수와 신인, 덜 알려진 작곡가를 응원해왔다. 도화진의 〈잠시잠깐〉, 김정배의 〈사랑의 빈차〉, 전철완 작곡가와 〈동백섬에서〉, 백치웅 작곡가와 〈대나무〉 등에도 전미경의 기획과 작사, 무대 참여가 담겼다.

 

화려한 이름보다 가능성을 보고, 유행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선택이다. ‘미운 남자’의 성과는 누군가를 밀어 올리기보다 함께 서서 증명하는 방식에 가깝다. 트롯 시장에도 여전히 약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로 읽힌다.

 

◆ 시대정신과 맞닿은 ‘약자와의 동행’ = 오늘날 문화의 방향성은 대형 자본이 아닌, 창작자와 현장의 생태계를 살리는 쪽에 있다. 전미경의 행보는 제도나 구호보다 먼저 움직인 실천에 가깝다. 지금도 그는 덜 알려진 작곡가, 덜 알려진 가수들과의 협업을 멈추지 않는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약자와의 동행’이다. 연초에 다시 돌아보게 되는 노래, 지난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보면, ‘미운 남자’는 올해 가장 요란한 히트곡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가요무대 신곡 기준으로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며, 가장 조용히, 가장 오래 걸어온 노래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장녹수, 해바라기꽃 이후, 전미경에게 다시 한 번 최고의 히트곡이 될 수 있을지, 업계와 대중의 시선이 조용히 모인다. 유행보다 늦게 오고, 숫자보다 감정이 먼저였던 노래. 그래서 연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