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 누가누가 잘하나?

 

 

장유리 교수

 

열두 달 중 1~2월이 문화예술 시장의 웜업(warm-up) 기간이라면, 다가오는 3월부터는 본격적인 엑서사이즈(exercise)가 시작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문화예술 현장에도 AI 기술이 점차 도입되며, 창작, 운영, 관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혁신적인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문화적 맥락 속에서의 공감과 해석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특정 주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문화예술은 단순한 데이터의 조합을 넘어선다. 하나의 공연, 하나의 작품에는 예술가의 삶과 철학, 그리고 이를 감상하는 관객들의 해석이 깊이 얽혀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전통 판소리를 감상할 때 소리꾼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혼은 AI가 이해하거나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AI는 음역대를 분석하거나 선율을 모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판소리에 담긴 '한(恨)'의 정서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이는 인간만이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의 영역이다.

 

무용의 예술적 표현과 즉흥성

무용은 몸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이야기를 창조하는 예술이다. 이는 단순한 동작의 반복을 넘어, 순간의 감각과 즉흥성이 더해진 창작 과정이다. AI는 정교한 프로그램을 통해 동작을 재현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무용수가 자신의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하고 관객과 교감하는 능력을 갖추지는 못한다.

 

춤은 공연의 분위기, 무대의 에너지, 그리고 관객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한다. 예를 들어, 한국 전통 춤인 살풀이에서 무용수는 자신의 내면을 춤으로 풀어내며 관객과 교감한다. 이는 인간의 감정과 정서적 요소가 결합된 예술로, AI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깊이 있는 표현 방식이다.

 

인간과 인간의 직접적인 연결

문화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다.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와 관람객, 무대 위 배우와 관객, 전통 시장에서 만나는 장인의 손길. 이러한 경험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진정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 도예가들이 빚어낸 그릇 하나에는 흙을 다루는 손의 감각과 세월이 축적된 기술이 깃들어 있다. 관람객이 그 그릇을 직접 만지고 장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단순한 물건이 예술로 승화된다. 이러한 관계적 경험은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한 가치다.

 

예술과 기술의 차이점

예술과 기술의 차이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유머러스한 말이 있다.

 

“예술은 돈을 쓰는 것이고, 기술은 돈을 버는 것이다.”

 

필자는 과거부터 예술 또한 기술 못지않게 경쟁력 있는 산업임을 강조하며, 이를 직접 증명하겠노라 다짐한 바 있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을 실천하며 글로벌 마켓과 무대를 종횡무진한 수십 년의 여정 속에서, 문화예술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성장하는 현실을 목격해왔다.

 

예술은 감정과 창의성,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비롯된 깊은 영감을 기반으로 한다. 반면, 기술은 효율성과 정밀성을 추구하며, 문제 해결과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예술은 정답이 없는 영역에서 인간의 다양성과 주관성을 존중하는 반면, 기술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객관성과 일관성을 강조한다.

예술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개인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한 작품이 같은 관객에게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른 감동을 줄 수 있는 반면, 기술은 동일한 조건에서 일관된 결과를 제공한다. 이러한 본질적인 차이로 인해 예술과 기술은 서로의 영역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윤리적 판단과 문화적 책임감

문화예술은 종종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며,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변화를 촉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깊은 윤리적 판단과 책임감이 필요하다. AI는 이러한 작업을 모방할 수 있을지라도,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윤리적 결정을 내릴 능력은 없다.

 

AI는 한국 문화예술 현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하고, 새로운 형태의 창작을 도와주는 등 실용적인 장점이 많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본질은 인간의 경험과 연결, 그리고 공감에 있다. 이러한 본질은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다.

 

다가오는 봄, 우리는 AI가 아닌 인간의 손과 마음이 만들어낸 진정한 가치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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