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베르너 사세(73, Werner Sasse)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전 석좌교수의 마음으로 그린 수묵화 전시회가 눈길을 끈다.
1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옥인동 아주 작은 갤러리 서촌재에서 열리고 있는 베르너 사세(72) 교수의 ‘안을 보다’전은 그가 평소 그려 놓은 수묵화 1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그가 한국과 첫 인연을 맺은 지난 1966년 이후, 지금까지 줄곧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독일식 표현 사세(Sasse)를 한국식 호 思世(사세)로 표기해 사용하고 있고, 한국말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의 호 思世(사세)는 ‘세상을 사고한다’, ‘세상사를 생각한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유추해 이번 전시 주제 ‘안을 보다’를 깊게 생각해 보면 ‘안을 보다’는 인간의 내면의 성찰, 자아의 성찰 등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 독일인 베르너 사세 교수가 그려 전시한 전통 수묵화의 깊은 의미는 무엇일까.
그에게 그림 그리기는 해방을 뜻한다. 처음 붓으로 그림을 시작할 때 언제나 불안하고 불문명한 압력이 앞서지만 차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때로는 분노도 생긴다는 것이다. 전시 수묵화 대부분은 산, 암벽, 먼 해안, 나무, 인간 등이 소재지만, 한지에 첫 획을 긋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등을 그리고 나면 그때서야 자신과 그림 사이에 대화가 시작된다고. 대화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더 이상 그림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붓, 흰 종이 그리고 검은 선들이 자신들의 삶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만 작가는 대답하는 자, 그림이 질문을 던지면 대답을 할 뿐이고, 그림은 더 이상 풍경과 상관을 잃고 추상이 된다는 것이다.
1일 오후 오프닝 행사에 만나 베르너 사세 교수는 “66년부터 70년까지 전라남도 나주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했다”며 “일생동안 독일에서 한국학을 했고, 한국과 독일을 자주 왕래하면서 현지조사, 자료수집 등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다보니 한국의 문화예술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며 “수묵화에 관심을 갖고 그림을 그렸고, 현재 전시한 작품들은 평소 그려 집에 보관해 놓은 수묵화를 골라 전시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사세 교수는 인왕산 수성동 계곡에서 대형 수묵화 퍼포먼스를 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전시를 관람한 임기연 액자작가는 “독일인으로서 수묵화를 전시한다는 자체도 흥미롭지만, 전시 주제 ‘안을 보다’에서도 알 수 있듯 심오한 의미가 있는 전시”라며 “그림을 보면서 자아 성찰의 깊은 뜻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갤러리 서촌재 김남진 관장은 “외국인의 눈으로 우리 문화를 소중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좋았다”며 “갤러리 서촌재를 가장 한국적인 공간이라고 선택해 수묵화 전시를 하는 사세 교수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다음은 베르너 사세 교수의 작업노트이다.
“선은 그 자신을 넘어서 역동적인 방향성을 갖는다. 그들의 균형, 역방향을 요구한다. 이 때 내 임무는 조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몸을 곧추 세우고 일어서는 힘과 받쳐주는 힘, 앞을 향해 내달려나가는 힘과 멈춰 서는 힘의 조화, 획은 도전이다. 그림이 스스로 자란다. 그림이 마침내 균형을 잡고 내 앞에 서면 내 마음을 짓누르던 압력도 문득 사라진다.
나는 다시 자유를 찾아 느긋하게 그림을 바라본다. 그림 그리기는 치료행위이다. 그 뒤 나는 며칠간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고친다. 여기에 한 점을 추가하고 저기에 한 획을 조금 더 길게 늘어뜨리거나 더 굵게 고친다. 그러다 그냥 휴지통에 던져버리기도 한다. 그림과 나의 대화는 끝이 나고, 나는 다시 한국학자로 돌아온 자신을 바라본다.”
베르너 사세 교수는 194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생해 1966년 전라남도 나주에서 개발원조사업으로 참여를 했고, 독일 보흠대학에서 한국학 박사를 받아 보흠대학과 함부르크대학 에서 한국학 교수를 지냈고,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유명 무용인 홍신자씨가 그의 배우자이다. 화가로 활동하며, 수십차례의 미술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며 정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