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훈 시인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찌 한 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 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게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김종해,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김종해 시인의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 시인은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내란’으로 당선됐고,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낼 만큼 명망이 높은 시인이다. 김 시인은 시 ‘그대 앞에 봄이 있다’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역경과 환난을 당하는 일을 파도치고, 바람이 부는 자연현상에 비유했다. 그뿐인가. 사랑에도 역경과 환난이 없을 수 없음을 강조했다. 김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추운 겨울과 사랑의 아픔 등 역경을 이겨낸 후에 꽃이 피는 봄이 온다고. 이제 봄은 멀지 않았다. 혹독한 겨울 차가운 삭풍을 몸소 견디어 내는 당신이 바로 새봄의 주인공이라고. 김
▲우태훈 시인.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박두진, 시 ‘해’ 이번 칼럼에서는 청록파 시인 중의 한 명인 박두진 시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박 시인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경기도 안성시에서 태어났다. 박 시인은 초기에 역사 및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작품을 썼고, 후기엔 기독교적 신앙체험을 고백하는 작품을 주로 썼다. ‘해’라는 작품은 일제암흑기를 몰아낸 8
▲우태훈 시인해병대산이 맘껏 밟으라고 눈길을 내주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화들짝 놀란 다람쥐가 곁에 서서 걷는 것이었다.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보듬어 주었다. 눈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밟으며 종소리를 따라서 간다. 같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억으로 남겠는데 했더니 다람쥐는 콧방귀 뀌면서 좋을 때만 마누라지 한다. 너털웃음이 귓가를 스쳐간다. ‘옛기 이 사람아’ 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자박자박 네 발걸음이 사천 번쯤 찍히자 말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이 보이셨다. 누가 경배하라고 하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모두 고개 숙여 경배하는 모습이 마구간 추위를 녹이는 듯 싶었다. - 우태훈, 시 ‘눈길을 밟으며’ 필자가 지난 2014년 10월에 출간한 시집 ‘눈길을 밟으며’에 수록한 작품 ‘눈길을 밟으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지난 2013년 성탄절을 맞이해 아내와 성탄절 미사를 보러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해 성탄절은 눈이 많이 와서 온 세상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서울대교구 금호동성당은 해병대산 산기슭에 자리한 아름다운 성전이다. 성탄절 미사를 보러 가서 사람들의 마음 또한 새하얗게 맑고 깨끗하리라고 보여진다.
▲우태훈 시인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 ‘나그네’ 이번 칼럼에서는 저번 칼럼의 화답 성격으로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저번 칼럼에서 조지훈 시인의 ‘완화삼(玩花衫)’을 다뤘다. 1916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박 시인의 이름은 ‘박영종’으로 ‘목월’은 호로 쓰였다. 조 시인과 박 시인은 당시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다. 그래선지 박 시인의 나그네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과 관련해 다양한 얘기가 나온다. 그중 박 시인이 조 시인을 자신이 자란 경남 경주로 초대했고, 두 사람은 문학과 사상 등 많은 대화를 이어갔다. 이때 경험담을 조 시인이 박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완화삼’을 보냈고, 박 시인은 조 시인에게 답장으로 ‘나그네’를 보냈다고 한다. 이 시를 새해 첫 칼럼으로 소개하는 이유도 있다. 바로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구절 때문이다. 우리는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작년 너무나 힘든 한해를 보냈다. 이에 새해에는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고, 우리 모두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
▲우태훈 시인차운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 시 ‘완화삼’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가 광복을 한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창립한 문인 조지훈 시인의 시 ‘완화삼’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는 조 시인이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창립하던 해에 ‘상아탑’ 잡지 5호를 통해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꽃을 완상하는 선비의 적삼이다. 이 작품은 조 시인이 박목월 시인에게 보내는 것으로, 이 시의 화답으로 박 시인 역시 ‘나그네’를 지었다. 조 시인과 박 시인은 당시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다. 청록파 시인이란, 문학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공통된 주제로 시를 쓴 인물들을 지칭한다. 광복 후 만들어진 시라고 해도, 일제 말기를 살아가던 청록파 시인들의 입장에서 ‘어두운 현실’을 마땅히 달랠 길이 없었을 터. 따라서 자연을 소재로 본인들의 입장을 담고자 했던 것
▲우태훈 시인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들에는 오곡백과 풍성하네 그려. 저 멀리 여객선 통통소리 들릴 듯, 바다에는 흰 파도 흰 파도라네. 밤하늘 별들이 아름답게 수놓으면, 멍석이라도 길에 펼쳐놓고 지난 얘기 밤 깊어가네. 반딧불 번쩍번쩍 이따금 시원한 바람, 이마를 스쳐가면 선풍기가 필요없다. 고향의 집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우태훈, 시 ‘고향의 집’ 필자가 지난 2008년 상반기 시인 커뮤니티인 ‘시마을’에 출품작으로 낸 ‘고향의 집’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부동산 문제와 ‘살짝’ 궤를 같이 한다. 요즘 수도권 어디를 가 봐도 꼭 언급되는 말이 있다. 바로 “재개발”이다. 필자는 인천 강화군 길상면 장흥리 서남촌 갯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갯마을은 재개발로 인해 현재 과거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뿐인가. 필자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갯마을에는 수많은 반딧불들이 밤하늘을 비췄다. 어릴 적엔 반딧불을 잡으려고 여러모로 뛰어다닌 적이 있었다. 가을철 풍성한 들녘이 펼쳐지고, 여름밤엔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혀주던 내 고향. 아련한 추억이 깃든 그곳은 차마 잊혀지지가 않는다
▲장유리 교수“선정릉이 그립다.” 지난 주말 필자가 무의식적으로 언급한 발언이다. 틈만 나면 국외를 누비며 글로벌 문화활동을 했던 탓일까. 코로나 사태로 ‘방콕(방에 콕 밖혀있다)’을 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이러한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가뜩이나 교단도 종강을 알리는 계절이 찾아왔다. 하루하루 작은 여유가 생기자 집 근처 선정릉이라도 나서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선정릉이 그리운 이유는 단순히 코로나에 따른 외출 삼가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도심 속 넓은 공간의 왕릉이 자리한 것은 이 선정릉이 유일할 것이다. 이는 가수 싸이를 통해 서울 강남이란 지명을 전 세계적으로 알렸음에도 마음 한구석 씁쓸한 이유다. 강남의 명소이자 긴 역사를 자랑하는 선정릉의 유래와 특징 등은 외국인에게는 물론, 우리 국민들에게조차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정릉은 조선 전반기를 꽃피운 성종 및 중종 역사와 연관이 깊다. 무엇보다 왕릉에 왕의 유해가 없고 의복만 안장 돼 있는 점은 특수한 부분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Clever thing 클레버씽!! 이를 스토리텔링화한 융복합 실감형 콘텐츠로 문화향유의 장에서 역
▲우태훈 시인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오세영, 시 ‘그릇’ 이번 칼럼에서는 오세영 시인의 그릇이란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 시인은 1942년 전북 전주시 인후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졸업한 후 시인으로 우리문학을 살찌우는데 주력했다. 오 시인의 시 ‘그릇’은 첫 문장부터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는 파격적인 문장은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칼은 무엇이던지 벨 수 있다. 여기에 우리 모두 그릇을 깨트려 다쳐본 경험들이 있다. 이를 비춰볼 때 이 작품의 첫 문장은 매우 강렬하다. 그릇이 깨진다고 하면 보통 문학계에서는 균형이 흐트러진 것으로 해석한다. 또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뜻한다. 이런 점은 이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여기서는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고 부연했다. 이 시는 코로나 사태에 신음하는 우리사회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우태훈 시인嬴氏亂天紀 賢者避其世(영씨난천기 현자피기세) / 黃綺之商山 伊人亦云逝(황기지상산 이인역운서) 往迹浸復湮 來逕遂蕪廢(왕적침복인 내경수무폐) / 相命肆農耕 日入從所憩(상명사농경 일입종소게) 桑竹垂餘蔭 菽稷隨時藝(상죽수여음 숙직수시예) / 春蠶收長絲 秋熟靡王稅(춘잠수장사 추숙미왕세) 荒路曖交通 鷄犬互鳴吠(황로애교통 계견호명폐) / 俎豆猶古法 衣裳無新製(조두유고법 의상무신제) 童孺縱行歌 斑白歡游詣(동유종행가 반백환유예) / 草榮識節和 木衰知風厲(초영식절화 목쇠지풍려) 雖無紀歷志 四時自成歲(수무기력지 사시자성세) / 怡然有餘樂 于何勞智慧(이연유여락 우하노지혜) 奇蹤隱五百 一朝敞神界(기종은오백 일조창신계) / 淳薄旣異源 旋復還幽蔽(순박기이원 선부환유폐) 借問游方士 焉測塵囂外(차문유방사 언축진효외) / 願言躡輕風 高擧尋吾契(원언섭경풍 고거심오계) -도연명(陶淵明), 시 ‘도화원기 본문(桃花源記 本文)’ 전 칼럼에서 ‘도연명(陶淵明)’ 시인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서문을 다뤘다. 이에 이번 편에서는 본문을 다뤄보고자 한다. 도화원기의 본문 역시 서문과 마찬가지로 관직사회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 본문에서는 서문보다 그 이면이 더욱 적나라하게 설명된다. 본
▲우태훈 시인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達桃花林. (진태원중 무릉인포어위업 연계행 망로지원근 홀달도화림) 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협안수백보 중무잡수 방초선미 낙영빈분)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便得一山.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舍船從口入. (어인심이지 부전행 욕궁기림. 임진수원편득일산. 산유소구 방불약유광. 편사선종구입)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良. (초극협 재통인 부행수십보 활연개량)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토지평광 옥사엄연 유량전미지상죽지속. 천맥교통 계견상문) 其中往來種作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髫 竝怡然自樂. (기중왕래종작남여의저 실여외인 황발수초 병이연자락)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견어인 내대경 문소종래 구답지 편요환가 설주살계작식) 自云: 先世避秦大亂 率妻子邑人來此絶境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자운: 선세피진대란 솔처자읍인래차절경불부출언 수여외인간격) 問今世何世乃不知有漢 無論魏晉. 此人一爲具言 所聞皆歎惋. (문금세하세내부지유한 무론위진. 차인일위구언 소문개탄완)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 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