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훈 시인즐거움에 찬 젊은이여, 이리로 오라, 그리하여 열리는 아침을, 새로 태어나는 진리의 이미지를 보라. 의심은 달아났다 이성의 구름도 어두운 논쟁도 간계한 속임수도 달아났다. 어리석음이란 일종의 끊임없는 미로, 얽힌 뿌리들이 진리의 길을 어지럽힌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기에 빠졌던가! 그들은 한밤 내 죽은 자들의 뼈 위에 걸려 넘어지고, 근심밖에 모른다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려고 한다 그들이야 말로 인도를 받아야 할 것이면서도. -윌리엄 블레이크, 시 ‘옛 시인의 목소리’ 이번 칼럼에서는 영국의 시인이자 미술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 옛 시인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175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블레이크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의 세계를 살았던 인물이다. 신고전주의 시대를 살아간 장본인인 셈이다. 블레이크 시인의 이 작품은 현상유지를 거부하는 노력 속에서 시작의 근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찰했음이 문학계의 전언이다. 어려우면 어려울 수 있는 이 시를 통해 저자는 “요즘 세상살이를 보면 장님이 길을 안내하고, 함께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것 같다. 또 청렴결백한 청백리를 찾아보기 힘든
▲우태훈 시인저녁 노을 만큼이나 아름다우신 단미님 아이들 손잡고 가보자 저 멀리까지 겨울 철새 떼처럼 우리도 가는 거야 올망졸망 모여서 사랑얘기 나누는 철새 떼처럼 우리도 가보는 거야 최선을 다한 하루 이제는 서산 너머에서 쉬렵니다 호수에 잠긴 화왕산 빛이 있고 노을이 있고 호수가 있어 뜨거운 정열로 나의 가라앉음 노을로 솟네 내가 가면 철새들도 날아가겠지 일몰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염없이 너를 보네 아쉬움을 달래며 산 위에 쉬었다가네 희망찬 내일을 약속하며 -우태훈, 시 ‘우포늪의 저녁 노을’ 이번 칼럼에서는 필자의 등단시기 작품인 ‘우포늪의 저녁 노을’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인 박두진 시인의 추천을 받은 황금찬 시인으로부터 시 창작 지도를 받고, 황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우포늪의 저녁 노을 역시 청록파 시인들이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을 다뤘듯 표현하기 위해 작성한 작품이었다. 5연 ‘나의 가라앉음 노을로 솟네’, 6연 ‘내가 가면 철새들도 날아가겠지’ 등이 이를 방증한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요즘 코로나로 발길이 묶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를 주기 위함이다. 현 시국에
▲장유리 교수 반가움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신체언어인 '악수'. 이 악수의 유래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중세시대 때 기사들의 결투 문화에서 유래됐다는 해석이 가장 신빙성이 있을 터. 당시 기사들은 대부분 칼을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적을 만났을 경우는 오른손으로 칼을 빼 들어서 '적의'를 표현했다고 한다. 반면 상대와 싸울 의사가 없을 땐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른손을 내밀어 잡았다고 한다. 이처럼 악수는 적의가 아닌 선의를 보여주는 행동으로 인식됐고, 우리도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 때에 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오른손으로 악수를 해왔다. 그리고 악수를 하며 손을 잡고 팔을 흔드는 이유는 맞잡은 손의 소매 부분에 무기를 숨기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행동이었고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았던 여성들은 악수를 할 이유가 없었으며 그래서 과거의 여성들은 악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악수가 선의의 표현 방법이라면 반가움을 표현하는 또 다른 신체언어로는 '포옹(抱擁)'이 있다. 서로 껴안는 포옹은 반가움을 넘어서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는 신체 언어다. 우리는 상대방을 위로해줄 때도 포옹한
▲우태훈 시인어젯밤 내 꿈 속에 들어오신 그 여인이 아니신가요. 안개가 장막처럼 드리워 있는 내 꿈의 문을 살며시 열고서 황새의 날개 밑에 고여 있는 따뜻한 바람 같은 고운 옷을 입고 비어있는 방같은 내 꿈속에 스며들어 오신 그분이 아니신가요. 달빛 한 가닥 잘라 피리를 만들고 하늘 한 자락 도려 현금을 만들던 그리하여 금빛 선율로 가득 채우면서 돌아보고 웃고 또 보고 웃고 하던 여인이 아니신가요. -문효치, 시 ‘비천’ 이번 칼럼에서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던 문효치 시인의 작품 ‘비천’을 소개하고자 한다. 문 시인은 1943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산색’이 당선돼 문단에 올랐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향가 및 시조 등을 현대적 감각으로 탈바꿈하는데 힘썼다. 문 시인이 쓴 비천에서도 이러한 노력이 돋보인다. 비천이란 말은 어떻게 보면 생소한 단어일 수 있다. 이는 ‘선녀’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선지 문 시인은 “내 꿈 속에 들어오신 그 여인이 아니신가요”라는 문장을 구사했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유명인들의 발목을 붙잡는 이른바 ‘학폭(과거 학교 폭력)’과도 연관이 깊다. 각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우태훈 시인한 다발 엮어서 보내는 이 꽃송이들 지금은 한껏 피어났지만 내일은 덧없이 지리 그대여 잊지 말아요 꽃처럼 어여쁜 그대도 세월이 지나면 시들고 덧없이 지리, 꽃처럼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우리도 간다, 흘러서 간다 세월은 가고 흙 속에 묻힌다 애끓는 사랑도 죽은 다음에는 속삭일 사람이 없어지리니 사랑하기로 해요, 나의 꽃 그대여 -롱사르, 시 ‘마리에게 보내는 소네트’ 이번 칼럼에서는 프랑스에서 ‘시의 선구자’로 불리는 롱사르 시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마리에게 보내는 소네트’이다. 우선 롱사르 시인은 1524년 프랑스 루아르 지방에서 태어났다. 귀족 출신으로 고전문학에 소양이 있던 아버지의 지도를 받고 프랑수아 1세의 왕실청년대 활동을 하기도 했다. 롱사르 시인은 당시 세력을 떨치고 있던 궁정시인들의 부자연스럽던 시를 비판하고, 헬레니즘의 시 개념을 도입해 문학계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롱사르 시인은 ‘목가적 사랑시’를 주로 썼다. 목가적 문학이란 ‘농촌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우며 서정적인 글’을 말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마리에게 보내는 소네트’는 지난번 칼럼에서 소개한 기욤 아폴리네르 시
▲장유리 교수요즘 지상파와 종편 등 다수의 채널에서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트로트 경연'이다. 국민들의 사랑을 꽤 많이 받는 듯 싶다. 각 방송사에서는 자사 트로트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진을 앞세워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흥을 돋우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애청자 중 한 사람으로 틈틈이 시청하고 있다. 그리고 볼 때마다 "대한민국은 예인이 넘치는 문화국가구나"하고 감탄할 때가 많다. 트로트 경연과 함께 다뤄지는 '무명가수 오디션 프로그램'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이는 새로운 색으로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잊고 있던 명곡들을 다시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니, 많은 이들로부터 '브라보'를 외치게 한다. 이번 칼럼을 빌려 무대를 장악하고 관객을 장악하고 모든 공간을 장악하는 대한민국 아티스트들에게 기립 박수를 보낸다. 당신들 덕분에 귀는 호강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참가자들의 모습과 진심에 국민은 마음의 감동과 힐링을 얻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멀어져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 메말라가는 정서에 아티스드들의 행보는 위안이 된다. 대한민국의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까지 그들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길 열렬히
▲우태훈 시인여기 강이 있었다. 우리들의 국토 이 땅에 이름하여 북한강이라 했다. 태양이 문을 열었고 달이 지곤 했다. 하늘 꽃들이 강물위에 피어나 아름다운 고장이라 했다. 신화의 풀잎들이 문을 열기 전 지혜의 구름을 타고 선인(先人) 들이 바람처럼 찾아와 보석의 뿌리를 내리고 백조의 이웃이 되었다. 칼날의 날개를 단 흉조들은 사악한 터전이라 버리고 강마을을 떠났다. 비단으로 무지갯빛 다리를 세우고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 내일 저 하늘에 무리별로 남으리라. 강은 역사의 거울이다. 패수에 담겨있는 고구려를 보았다. 금강에서 백제의 나뭇잎들은 시들지 않는 깃발이었지. 신라의 옷깃이 저 낙동강에 지금도 휘날리고 한강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그 참화가 시들지 않고 거울 속에 떠 있다. 북한강 백조의 날개와 하나가 된 우리들의 행복한 삶터, 사랑하라. 우리들의 내일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황금찬, 시 ‘별이 뜨는 강마을에’ 이번 칼럼에서는 황금찬 시인의 북한강 문학비 ‘별이 뜨는 강마을에’를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는 생전 99세로 현역 최고령 문인으로 기록된 우리나라의 원로 시인이다. 황 시인은 1939년 일본에 건너가 다이도학원에서 유학했고, 1943년 어릴 적부
▲우태훈 시인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마음 속 깊이깊이 아로 새길까 기쁨 앞엔 언제나 괴로움이 있음을,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 얼굴 마주하며 우리의 팔 밑 다리 아래로 영원의 눈길 지친 물살이 천천히 하염없이 흐른다.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사랑이 흘러 세느강물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찌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하더냐, 희망이란 또 왜 격렬하더냐.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햇빛도 흐르고 달빛도 흐르고 오는 세월도 흘러만 가니, 우리의 사랑은 가서는 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만 흐른다. 밤이여 오너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만 머문다. -아폴리네르, 시 ‘미라보 다리’ 프랑스의 시인이자 평론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를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아폴리네르 시인은 입체파 화가로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의 친구로도 유명하다. 또 초현실주의 및 모더니즘의 창시자로 불린다. 아폴리네르 시인이 작품인 미라보 다리는 프랑스 파리를 흐르는 세느강 위에 놓인 다리다. 그리고 이 시
▲우태훈 시인나는 진실한 마음의 결합을 조금도 방해하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변한다거나 반대자에 의해 굽힌다고 하면 그런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가 없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 사랑은 폭풍우가 몰아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고정된 이정표다. 사랑은 이리저리 헤매는 모든 배에게 얼마나 높은지는 알 수 있어도 그 가치는 모르는 빛나는 별이다. 장밋빛 입술과 뺨이 세월이 휘어진 낫을 비록 피할 수는 없다고 해도 사랑은 세월의 어리석은 장난감이 아니다. 사랑은 한두 달 사이에 변하기는 커녕 운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참고 견딘다. 이것이 착오라고 내 앞에서 증명된다면 나는 글 한 줄도 쓰지 않았을 테고 아무하고도 사랑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시 ‘사랑과 세월’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사랑과 세월’이란 작품을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1564년 잉글랜드 중부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출생한 셰익스피어는 희·비극을 포함한 38편의 희곡과 여러 권의 시집 및 소네트집을 남기며 ‘세계의 대문호’로 이름을 남겼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시 ‘사랑과 세월’에서는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우태훈 시인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써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만일에 흙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게 될지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만일에 모래벌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며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존 던, 시 ‘누구를 위하여 종(鐘)은 울리나’ 이번 칼럼에서는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했던 존 던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1572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엔 ‘연애시’를, 말년엔 ‘종교시’를 주로 썼다. 그의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엑스터시’와 ‘안녕’, ‘노래와 소네트’ 등이 있다. 그의 수많은 명작 중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소개한 까닭은 이 작품에서 표현되는 사람의 분위기가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존 던 시인은 이 작품에서 사람을 섬으로 비유하며 ‘온전한 사람’은 없음을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