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 하면 ‘하얀 모시옷’, ’세모시‘ 한산 세모시‘, ’모시떡‘, 우리 가곡 「그네」의 첫 소절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 가 생각난다. 수필가이자 시인인 피천득은 “한여름 나일론 거리에 문득 하얀 모시 적삼과 파란 모시 치마가 눈에 띤다. 뭇 닭 속에서 학을 보는 격이다”라고 표현했다. 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생활을 “모시같이 섬세하고 깔끔하며, 옥양목같이 깨끗하고 차가웠다”고 했다. 모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름철 전통 옷감이다. 부채로 무더운 여름을 이겨냈던 시절에 몸에 달라 붙지 않고, 까실 까실한 표면과 풀을 먹여 살린 탱글한 올과 올 사이로 통하는 바람은 습기가 많고 무더운 여름철 옷감으로 모시보다 좋은 것이 없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후부터 모시를 사용했고 모시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부각 된 것은 통일신라 시대 이후이다. 특히 고려시대 모시 품질의 우수성은 함경북도 육진의 ‘발이내포(鉢伊內布’) 이야기와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 高麗圖經』에서 ‘백저포로 지은 의복은 그 깨끗함이 백옥과 같다’고 극찬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고려는 중국 황실에 황제 80필, 황후 백황홍색 저포 각 9필, 두 번째 황후에게
요즘 같은 무더위나 한겨울 영하의 날씨에도 광화문, 북촌, 인사동, 전주 한옥마을 등에서 한복을 입은 외국 관광객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들은 한복을 입고 한국에서의 추억을 핸드폰 사진첩에 담으며 SNS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세계를 향해 전송하기도 한다. 국가유산청은 2013년부터 한복을 입고 4대 궁과 종묘, 조선왕릉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무료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경복궁ㆍ창덕궁ㆍ창경궁ㆍ덕수궁 등 4대 궁과 종묘에서 한복을 입고 입장한 관람객은 코로나 시기인 2020년 약 15만 명에서 2023년 180만 명, 2024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늘어난 숫자는 보는 관점에 따라 긍정적 측면도 있으나 적어도 한복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관람객 수의 거의 90% 이상이 내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입었던 한복이 과연 한복의 정체성과 한복의 미를 잘 표현하고 있는가? 이미 세계 각지로 송출된 사진 속 한복은 정말 한복이 맞나? 등등 솔직히 긍정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혹자는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나? 입어주는 것도 감지덕지, 그냥 입으면 되
“여러분은 한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개강 첫 수업에서 항상 학생들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학생들은 “한국음식, 한글 등과 같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라고 야심 차게 큰소리로 응답한다. 그러나 이어서 한복이란 명칭은 언제 생겨났는지?ㆍ한복의 형태적 특징은 무엇인지?ㆍ고구려 벽화 속 인물이 입고 있는 옷도 한복이라 할 수 있는지?ㆍ한복의 종류와 쓰개의 명칭은? 등등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하면 학생들 대부분은 남의 나라 옷에 대한 질문인양 입을 꾹 다문다. 특히 한복을 입어 본 경험과 추억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 한복을 입고 새뱃 돈을 받았던 아주 흐릿한 기억이나 유치원 생일 파티, 여학생들의 경우 학교에서 다도 체험을 하기 위해 엄마 한복을 대충 입고 갔던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도 그런 추억이 있는 학생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이러한 반응은 비단 학생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에 근대화를 계기로 옷차림이 서구화되면서 바로 이전까지 입었던 자국의 옷은 자연스레 ‘THE WORLD DRESS’ 소위 민속복, 민속의상으로 남게 되었다. 중국의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 우리의 한복 또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