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 김재필 기자) 엘리콧시티 MD 소재 하워드카운티 관광국과 한국 조선왕실의 궁중장식화인 한국전통 궁중채색화를 만나볼 수있다. 이번 전시회는 9월 20일부터 10월 20일까지 관광국웰컴센터(하워드카운티 엘리콧시티MD)에서 이문성 작가(경희대학교교육대학원 관화/민화 교육자과정 주임교수)와 한국대표 궁중화 화원들의 작품 50여점이 전시된다. 이문성 작가(궁중장식화국가계승자)는 한류문화의 열풍으로 K-Pop을 비롯해 드라마. 태권도. 한식. 한복등은 전 세계에 문화외교로 호평을 받고 있으나 한국궁중화는 크게 소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국적 전통채색미술의 위엄과 격조를 갖춘 궁중화를 한류문화의 콘텐츠로 만들어 널리 홍보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우리선조들의 얼이 담겨있는 한국궁중화(KOREAN ROYAL PAINTING COURT)를 세계적으로 대중화 시키는데 전념을 다해 새로운 미술세계 시대를 열 것" 이라며 세계 속 한류 문화로 계승발전 시키기 위해 2015년 부터 매년 2회에 걸쳐 워싱턴과 뉴욕에서 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일 열린 개막 리셉션에는 아만다호프(관광국국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축사에 매릴랜드주지사 영부인(유미호건),
(시사1 = 김재필 기자) 마애보살의 얼굴 표정이 아침에 다르고, 낮에 다르고, 밤에 다르다. 비가 내릴 때 다르고, 눈이 내릴 때 다르다. 바람이 불 때 다르다. 구름이 지나갈 때 다르고, 달이 지나갈 때 다르다. 어떤 마음일까. 합장을 하고 절을 하면서, 어느 사람은 포근하다고 말한다. 어느 사람은 무섭다고 말한다. 보는 사람 마음대로다. 다시,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한결같은 천년의 마음이다. 보타사 마애보살좌상(이하 마애불)을 찾아 갔을 때 만난 시인 윤희상의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이란 시다. 보타(普陀)란 ‘관세음보살’을 일컫는 말로 중국 저장성(浙江省) 주산군도(舟山群島)에 있는 산의 이름으로 당나라 때에 시작된 관음 신앙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보타>라는 이름의 사찰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지하철 6호선 안암역 2번 출구로 나와 고려대학교 병원을 올려다 보며 고려대학교를 우측으로 끼고 올라 가면 개운사 입구의 일주문 옆으로 난 길로 100미터를 더 올라가면 먼저 대원암이 보인다. 대원암(大圓庵)은 개운사의 산내 암자로 1845년(헌종 11)에 지봉우기가 창건했다. 이 곳에서 근대불교계의 대강백인 영호정호(
(시사1 = 김재필 기자) 경기도 이천 장암리에 자리한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보물 제 982호)의 뒷면에 '太平興國 六年 辛巳 二月 十三日(고려 경종 6년 980년)'이라고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 981년에 조성되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마애불중의 하나다. 이 또한 산이나 절 근처에 조성되지 않고 도로에서 몇미터 떨어지지 않은 농로옆 이 ‘미륵바우’라 부르는 2등변 삼각형 모양의 화강암 바위에 조성된 걸 보면 지방색이 엿보이는 토속 신앙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체 크기 3.2m의 이 보살상은 높은 관(冠)을 쓰고 손에 연꽃을 들고 있으며, 관(冠)에는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어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보살은 반가상(半跏像)의 자세로 오른발은 내려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대좌(臺座) 위에 놓고 왼발은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얼굴과 신체는 전체적으로 큼직하며 비례가 맞지 않아 둔중한 느낌이 들어 전반적으로 조각 기술이 다소 뒤떨어지지만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천의(天衣)에, 높은 보관을 쓰고, 연꽃가지를 손에 든 독특한 형식의 관음보살상이다. 잠시 있으니 한무리의 여인들이 마애불 앞에 정갈한 찻자리를 펴더니 차를 타 마애불에 차
(시사1 = 김재필 기자)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摩崖二佛並坐像. 보물 제 97호) 서예가이자 전각가인 국당 조성주(한국서예가협회 회장)작가가 2014년에 ‘불광(佛光)이라는 주제로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2주간 전각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 2,000여일에 걸쳐 전각석에 ‘묘법연화경’ 7만여자를 새긴 작품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까지 한 작품이다. 당시에 나는 6년에 걸친 그의 작업과정을 촬영하면서 ‘묘법연화경’을 접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견보탑품’ 에 다보불(多寶佛)과 석가불(釋迦佛)이 허공회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도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석가여래 상주설법”(釋迦如來 常住說法)과 “다보여래 상주증명”(多寶如來 常住證明)의 장면이 있는데 석가탑은 ‘묘법연화경‘을 설하고 있는 석가여래를 상징하고, 다보탑은 그의 설법 내용이 진실임을 증명하고 찬탄하는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중심이자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 충북의 교통은 오로지 육로로만 통한다. 특히 문경과 과산 지역은 충북 가운데서도 산이 많은 오지로 켜켜이 산중으로둘러싸여 있다. 속리산과 소백산맥이 뻗어 나와 경북 문경과 경계를 이루고 서
(시사1 = 김재필 기자) 철원은 나에게 매년 겨울의 진객 두루미 촬영으로 익숙한 고장이다. 이번엔 눈이 내리는 계절이 아닌 진달래가 꽃 피고 곰취가 잎을 돋우는 4월에 그 곳을 찾았다. 금학산(947m)에 위치한 마애불을 탐사 하기 위함이었다. 철원 동승읍 평야에서 올려다 보면 삼각형 모양으로 뽀족하게 솟아 있는 산으로 커다란 두루미(학)가 힘찬 날개 짓으로 비상하는 모습을 닮아 금학산(金鶴山)이라 했다 하니 예나 지금이나 철원은 겨울철에 두루미(학이라는 말은 중국어 표기라고 철원에서 철새 촬영시 만난 조류학자 윤무부 박사가 조언해줌 )가 겨울을 나기 위한 서식지로 제격이었나 보다. 금학산은 태봉을 세운 궁예에겐 잘못 판단한 서글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궁예가 개성에서 철원으로 수도를 옮길 때였다. 그는 고암산(북한 소재)과 이곳 금학산 중 어느 곳을 진산(鎭山)으로 해서 궁궐을 지을 것인지를 도선국사에게 물어 보니 “고암산에 지으면 단명할 것이나 금학산을 진산으로 삼아 궁궐을 지으면 국운이 300년 이상 계속될 것이요”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그러나 궁예는 한갓 풍수쟁이의 말이 헛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고집으로 금학산이 아닌 고암산 주변에 궁궐을 세웠
(시사1 = 김재필 기자)요즘 전국의 몇몇 연밭에서 볼 수 있는 '빅토리아연'으로 불리는 이 연꽃은 처음엔 흰색으로 피었다가 둘째날에 왕관모양으로 바뀌면서 색도 분홍색으로 바뀐다. 이름이 빅토리아 라고 불리는 것은 꽃의 모양이 빅토리아 왕의 왕관을 닮았다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잎의 지름은 2-3m로 뒷면에 촘촘이 짜여진 줄기가 어린이가 올라서도 괜찮을 정도로 튼튼하다. 아마존 지역이 원산지라서 "Victoria amazonica" 이며 영어명으로는 " Water Lilies" 이다.
(시사1 = 김재필 기자) 미국 국립지리학회가 1888년 창간한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1910년부터 칼러 사진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1910년은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의 국권이 상실된(8월29일) ‘경술국치’의 해이다. 당시에 선교사등 많은 서양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사람중의 한 사람인 미국의 여행가이자 사진가인 월리엄 채핀이란 사람이 서울여행에서 찍은 사진중 백불로 된 ‘마애불’ 사진이 있었는데 바로 ‘옥천암마애보살좌상’이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바로 1910년 11월호 ‘내셔널지오그래픽’지에 칼라사진으로 게재하였다. 사진을 보니 물이 흐르는 홍제천변의 보도각안에 백불로 보이는 마애보살좌상이 있으며 그 앞을 벙거지를 쓴 인력거꾼이 인력거를 끌며 지나가고 있다. 아마 이것이 컬러사진으로 외국에 소개된 최초의 마애불 사진이라 할 수 있겠다. 구한말을 전후하여 서울에 왔던 서양인들에겐 우리나라의 풍경이나 사회상들이 신기하게만 느껴져 셔터를 눌렀으리라. 내가 라오스의 오지마을에서 우리나라 60년대의 생활상이나 다름 없는 그들의 생활상과 풍경을 담았듯이... 조선후기 정조 연간에 수도 한성부의 생활상과 역사를 자세히 기록한 수헌거사는 저서 ‘한경지락’에서 옥
(시사1 = 김재필 기자) ‘교수님 저의 마을 뒷산에도 부처 그림이 새겨져 있는 큰 바위가 있는데유’ 대학에서 ‘서산 마애삼존불’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태안동문리마애삼존불입상’의 일화는 한국 미술사학자 정영호(1934~2017. 전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장 겸 석좌교수) 박사가 들려준 것으로 내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문화관광해설사 고종남씨에게 들은 얘기다. 그 말을 들은 조사팀은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환희와 기대속에 단숨에 달려간 그들은 태안시장에서 짜장으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험한 길을 40분여를 올라가 태을동천 맞은편에 17도 정도 기울어진 삼각형의 큰 바위에 빗물을 피하기 위해 사각으로 판 감실안에 서 있는 마애불을 친견했었으니 그 때가 1960년대 초였다. 그 후 마애삼존불입상은 1966년에 보물 제432호로 지정되었으며 불상 하체 부분과 연화대좌를 덮고 있던 토사를 걷어 내고, 재정비를 하여 전신이 드러난 완전한 모습을 갖추면서 학술적 조사 및 연구와 고증을 거치고 태안군의 품의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국보 제84호)‘에 선행하는 조형 양식을 지닌 백제 최고(最古)의 마애삼존불입상'으
(시사1 = 김재필 기자)서울 종로 한복판에 등장한 쥴리 벽화가 가로20미터 세로 2.2미터의 크기의 커다란 건물 옆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쥴리의꿈, 영부인의꿈, 쥴리의 남자들)문구가 지워져 있다. 글씨 위에 검은색으로 칠해진 상태다.
(시사1 = 김재필 기자) 단석산 신선사마애불상군(국보 제 199호) 진달래가 산간을 점점히 선홍빛으로 물들이던 계절에 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3번째로 신라인들의 불국토인 경주를 찾았다. 경주에 있는 토함산(吐含山), 금강산(金剛山), 함월산(含月山), 선도산仙桃山)과 함께 신라인들이 신성시 한 경주 오악(五嶽)중의 중악(中嶽)으로 불리는 해발 827.2m 높이의 단석산(斷石山)에 위치한 신선사마애불상군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다. 이 산은 경주 시내를 벗어난 건천읍과 산내면에 걸쳐 있어 삼국의 영토분쟁이 치열할 때 백제군들이 지리산을 넘어 함양과 청도를 거쳐 경주로 쳐들어왔던 길목으로 원래 이름은 월생산(月生山)으로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 산에서 수련했던 곳이라 한다. ‘삼국사지’와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등에 의하면 가야국 김수로왕의 13대 후손인 김유신이 15세에 화랑이 된 뒤 17세에 삼국 통일의 포부를 안고 입산하여 목욕재계 하고 고구려와 백제와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그러자 4일 만에 난승(難勝)이라는 한 노인이 나타나 신검(神劍)과 비법이 담긴 책을 주었다고 하며 그는 그 칼로 무술을 연마하면서 단칼에 바위를 내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