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 김재필 기자) 어두운 배경에 붓을 사용하지 않고 물감을 떨어뜨리거나 부어서 그리는 드리핑 기법으로 그어진 금색의 밝은 선의 움직임으로 자유롭고 활기찬 에너지를 표현하는가 하면, 2010년 중반부터 시작한 세상과 소통하는 컴퓨터 자판을 퀴빅 처럼 분리해 여러모양으로 붙여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오부제 작품들이 선보인 서양화가 조병철의 43번째 개인전인 『GOLDEN TIME & Enter-Communication』 전이 「갤러리 라메르(인사동 5길 26)」 3층 전관에서 열리고(7. 19 – 7. 30) 있다. 위의 두 기법으로 창작된 작품들에 대해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조병철의 작업은 이 두 무제를 놓고 고민해온 모습이 역력하다. 대학 시절부터 현실 인식이 강했기에 부언가 간접적으로 또는 은유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 현실과 예술가적인 이상 사이에 놓인 복잡한 사회문제들을 외면 할 수 없었고, 그래서 표현적인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는 자의식이 강한 작업을 했다. 그러다가 사회상의 변화에 따르듯 그 또한 순화된 표현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라고 하여 작가가 강한 자의식에 의한 현대적인 문법의
(시사1 = 김재필 기자) 오랜기간 장마가 걷힌후 덕수궁의 석조전 앞 배롱나무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시사1 = 김재필 기자)지난 16일밤 열반한 봉선사(주지:초격스님) 조실 '월운해룡대강백'의 영결식과 다비의식이 사부대중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1일 오전 11시 봉선사 '청풍루'에서 거행됐다.
(시사1 = 김재필 기자) “이제 이미 공사를 마쳐 보찰을 일신하였으니, 우러러 하늘의 도우심을 받들고 엎드려 여러 신들의 도움에 힘입어 세상을 맑게 하고 나라를 태평하게 한다. 그런 까닭에 산의 이름을 천호(天護)라 하고 절의 이름을 개태(開泰)라고 한다.” 위는 936년(태조 19)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과 전투에서 승리하여 후삼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룬 후 940년 황산벌에 속하는 이 지역에 백성들의 위문과 호국을 위하고 태평시대를 연다는 뜻을 가진 개태사(開泰寺)를 지은 후 낙성법회에서 화엄법회소를 직접 쓰고(고려사 절요) 한 말이다. 호랑이를 닮은 한반도 지형중 단전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는 논산지역은 계룡산맥과 대둔산이 만나는 분지로 삼국시대부터 무속신앙이 주류를 이루어 사찰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왕명으로 개태사가 창건 된 이후 관촉사, 쌍계사등이 들어서면서 불교의 확산이 활발해져 이 지역에 4구의 마애불(신풍리 마애불, 상도리 마애불, 수락리 마애불, 송정리 마애불) 또한 모두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 오늘은 먼저 고정산(145.8m)에 있는 신풍리 마애불을 찾아 나섰다. 승용차로 서울을 출발 해 서논산 IC로 진입하여 논산시 부적면 신풍
(시사1 = 김재필 기자)강원도 철원군과 경계지점에 있는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고대산 기슭에 있는 폐터널에 입구엔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한파로 인해 얼어붙어 멋진 역고드름 조각품을 만들고 있다. 종유석의 조각품은 수천만년에 걸쳐 만들어지지만 이 곳 역고드름 조각품은 매년 추위에 따라 새로운 조각품을 선 보이고 있다.
(시사1 = 김재필 기자) “저의 마을 뒷산 선영 산소 옆 개곱돌 바위에 연화문 같은 무늬가 있는데유. 아무래도 문화재 같아서 말씀 드리러 왔어유” 1983년 3월14일 당시 궁평리에 사는(현재는 화전 2리) 권영섭(權寧燮) 당시48세)씨가 할아버지 산소 옆 바위가 심상치 않아 봉산면 사무소에 신고하여 그 때까지 온돌 구들장용으로 씌여져 없어질 뻔했던 바위는 ‘백제의 유일한 석조사면불상이자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석조사면불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필자는 3년전부터 전화로 간곡히 부탁드려 사면불 앞에서 권영섭(올해 88세)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 할 기회를 가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나오신 그 분은 연세에 비해 무척 건강해 보였고 발견 당시의 일을 상세히 설명 해 주셨는데 여기에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 해본다. 『이곳은 우리 가문이 5대째 살고있는 마을로써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미륵당으로 불렀다. 또한 주위엔 오래전부터 서낭당도 있어 이 주위가 주민들의 신앙적 환경이 조성된 곳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산소 바로 옆(용미와 1m거리)에 개곱돌(蠟石)로 보이는 큰 바위가 50~60센티정도 땅속에 묻힌 채 있었는데, 가끔 몇몇 사람들이 삽과 호미등으로 묻힌 부분을 파
(시사1 = 김재필 기자) 동지추위가 매섭다 이 계절에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꽃잎이 떨어져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곳이 있다 인사아트 플라자(종로구 인사동) 4층 갤러리다. 많은 날 동안 붓으로 꽃잎을 떨어뜨리는 전병희 작가의 [마음으로 그리다]라는 작품이 걸린 전시장을 둘러봤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거의 1여년이 소요되는 입체 유화 기법인 ‘꽃잎 터치 법’은 어느 날 땅에 떨어진 수 많은 꽃잎이 겹겹이 쌓여짐을 보면서 영감을 받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전병희 작가는 전시장을 찾은 기자에게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내 안에 아픔을 나의 작품 속에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길 바라며 붓 끝에 행운을 담아낸 것이니, 모든 분이 마음에 위안을 받아 작품 속에 핀 꽃처럼 ‘마음의 꽃을 피우시길 염원한다” 면서 작품설명을 덧 부쳤다. 그의 ’꽃잎 터치 법‘은 미술계의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주목 받고 있는 새로운 장르다. 전시는 2022년 12월 21일부터 12월 26일까지 열린다.
(시사1 = 김재필 기자)격한 세월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는 마음은 누구나 앞서겠으나 그게 쉽지 않은 요즘. 잠시라도 한폭의 그림으로 어릴 적 고향의 동무를 만나 봄은 어떨까? 청목 박미자의 「문인화에 스미다」 展이 2022.11.30.일부터 12월 5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청목 박미자 작가(문인화가, 시인)의 작가노트를 읽어 본다 “사그락거리는 소리에 이끌려 먹을 갈고 있자니 아스라한 그리움 같은 것이 아물거리고 펼쳐진 종이가 어릴적 고향의 앞마당으로 보여 슬며시 곁에 있던 붓을 들고 한동안 그렇게 그리움의 자락들을 놀리며 놀았습니다.” 관람자들은 작가의 말대로 지나온 어릴 적 흔적과 말들의 그림자를 그림과 시로 표현된 전시작품에서 인생의 향이 이렇게 매듭이 되어도 좋겠다는 느낌을 받아가고 있다.
(시사1 = 김재필 기자) 태풍이 지나간 9월초의 날씨는 대지에 초록물감을 진하게 뿌려놓은 듯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이하 마애불로 칭함)이 위치한 금원산에 가는 길은 상쾌하다. 대구에서 지인의 승용차로 1시간 20여분을 달리니 금원산 휴양림 입구에 도달한다. 주차후 매표소에서 받은 안내지도를 보니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와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를 경계 하는 금원산(1,353m)은 주위의 기백산(1,331m)과 현성산(960m)이 함께 3형제처럼 삼각형으로 위치해 있다. 금원산은 옛날 금원숭이가 첩방지축으로 날뛰는 바람에 한 도승이 이곳 바위 속에 가두었는데 그 바위가 원숭이 얼굴처럼 생겨 낯바위라 부르다가, 음이 바뀌어 납바위가 되고 이런 전설로 금원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니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는 성인골(聖人谷) 유안청(儒案廳)폭포와 자운폭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고려시대 원나라에서 온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를 따라서 감음현을 식읍으로 받아 살았던 이정공 서문기(理政公 西門記)의 유허지로 그 자손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전해지는 지장암이었던 지재미골로 마애불이 있는 가섭암지는 여기서부터 1km 정도 올라간다. 두 여울(개천)의 징검다리
(시사1 = 김재필 기자) 나는 여름이면 시흥시에 있는 관곡지 연꽃 촬영을 자주 간다. 관곡지는 조선 세조 때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연꽃 씨앗을 심어 연못을 조성한 곳이다. 오늘은 연꽃이 피기전 날아오는 저어새를 촬영후 시흥에 있는 또 하나의 명물인 소래산에 있는 ‘시흥 소래산 마애보살입상(이하 마애불로 칭함)’을 답사하기 위해 소래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관곡지에서 10여km 떨어진 곳으로 자동차로 10여분을 달리니 소래산 휴양림 입구에 다다른다. 소래산(蘇來山)은 인천, 부천, 시흥3개 도시의 경계속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 299.6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돌이 많고 가파르기는 하나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어렵지는 않다. 주차장에 주차 후 휴양림 입구에서 출발하여 쉬엄쉬엄 20여분을 오르니 나무테크가 둘러쳐진 평지 위에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가 보인다. 테크 밑에서 올려다 보니 바위 앞에서 기도하는 두 분 할머니외엔 마애불이 안 보인다. 불심이 약했을까? 계단을 올라가 정면에서 바위중심을 찬찬히 뜯어보니 아뿔싸 장대한 마애보살상이 연화 대좌를 딛고 서서 대야동 아파트촌을 바라보고 있다. 마애보살입상은 소래산 8부 능선 동북쪽에 넓고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