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 김재필 기자)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 마누라가 짱돌을 쥐어박을라고 벼르고 있구만유.근데 이 산신령 양반이 가운데서 계심시러 본마누라가 돌을 던지지도 못하구 있지유.” 위의 말은 1959년 4월, 오랫동안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연재(然齋) 홍사준선생이 충남 서산의 보원사터에 유물조사 온 길에 지나가는 나무꾼에게 "이 근처에 불상이나 사람이 새겨진 바위가 없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나무꾼이 한 대답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인근 사람들에겐 본존불상(280cm)은 산신령, 우측 제화갈라보살상(170cm)은 본마누라, 좌측 미륵반가사유상(166cm)은 작은 마누라로 보였던 것이다. 이로써 그 마을 인근사람들만 알고 있었던 도장바위(印巖)에 새겨진 강댕이골 산신령은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마애불인”서산 마애삼존불” 로 다시 태어났다. 규모는 본존상의 높이가 2.8m 정도로 그리 크지는 않다. 홍사준
(시사1 = 김재필 기자) 온갖 사물은 순간순간 변한다. 한순간도 머무는 것이 없다. 그것은 마치 꽃잎에 매달린 이슬과 같고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으며 모래로 쌓은 담과 같다. - 보문경 중에서 - 헌데 1,000여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있다. 사바세계를 내려다 보는 근엄한 모습으로, 또는 어머니와 같은 푸근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천상에서 막 내려와 속세의 대중을 향해 웃는 익살스런 모습으로 바위나 암벽에 돋을새김이나 선각으로 조성된 마애불이다. 몇년전 나는 사진촬영차 신라의 옛 수도인 서라벌. 경주에 가 볼 기회가 있었다. 이차돈의 순교로 급속하게 전파된 신라의 불교는 국교로까지 굳혀져 정치적으로는 ‘호국불교’로 문화적으론 ‘불교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 따라서 로마가 서양에서의 야외 박물관이라면 경주 남산 역시 동양의 야외 박물관 이라 견줄 수 있음에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교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남산은 길이 약8km, 폭 약4km의 산줄기엔 불상 80여채, 탑 80여기, 절터 110여개소의 불국토를 이루었다. 나는 왕릉등을 촬영하고 삼릉계곡을 갔다 오다가 지인에게서 근처에 ‘할매부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