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신앙과 미륵신앙을 구현한 여래▲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제 115호)<사진=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영주 가흥동 마애불을 답사를 마치고 영주에 사는 지인(시인)의 안내를 받아 대구로 향하는 5번국도를 타고, 안동쪽으로 자동차로 30여분을 달리니 왼쪽에 넓은 공원이 보인다. 솔씨공원이 있는 제비원이다. 옛날에 경상도에서 충청도나 경기도로 갈 때 안동을 지나 소백산맥을 넘기전의 길목으로 제비원의 명칭에서 '원'은 길손들이 쉬어가던 일종의 여관을 뜻한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지방으로 출장 가는 관리들의 숙소로 쓰기 위하여 교통 요지에 있는 사찰을 국가적인 차원의 숙소인 ‘원(院)’으로 지정하여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제비원은 청송의 주산지와 절골과 함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감독)”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어렸을 때 나는 민요를 자주 들었는데 김세레나의 ‘성주풀이’도 그 중 하나였다. 그때는 어린 소견으로 이 노래가 경상북도 성주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안동 제비원이 성주풀이의 근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였다. 시 성주풀의 설화는 이렇다. 하늘나라 천궁(天宮)에
▲금강하구 하늘에 가창오리떼의 군무가 비상한다.<사진=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새해 벽두에 금강하구 하늘에 가창오리떼의 군무가 비상한다. 가창오리는 매년 11월 초부터 3월초까지 우리나라에 머무는 철새로 세계 약 30만마리중 95%정도가 우리나라에 와서 겨울을 난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살아 있는 야생의 아름다움이 잘 담긴 영국 BBC의 유명한 자연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Planet Earth)’에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가 딱 한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천수만과 금강하구의 가창오리가 비상하는 군무다. 사진에서 보는 비상장면은 야간에 섭식하는 가창오리가 낮에 휴식후 밤에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일제히 준비하는 행동으로 우리나라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다.
2022년 임인년 새해 영종도에서의 일출▲2022년 임인년 새해 영종도에서에의 일출<사진 =김재필 기자>
12월 23일부터 31일까지 서울예술의전당에서▲개인소장 반구대 암각화<사진=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2021’ 아시아캘리그라피 축제(Asia Calligraphy Festival)가 사단법인 아시안캘리그라피협회(이사장 이주형)주최로 오는 12월 23일부터 31일까지 서울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다. 전시형태의 축제인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 최고 최대 암각화 탁본과 함께 캘리그라피 마스터 130여명이 동방의 문자 흔적을 새로운 감성으로 창작한 작품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 일본, 중국, 터키, 방글라데시, 이집트, 스리랑카. 인디아 등 8개국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출품되어 곳곳에 인류문화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적상(跡象)을 재현하여 인류 문화의 원초적 감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순수한 미적 발견을 통해 아시아 전통문화예술의 거점를 마련 한다는 취지이다. 이집트 히에로글리프(Egypt Hieroglyph)상형문자나 고대 암각화, 벽화 등에서 오염되지 않은 ‘원시적 순진성’을 발견하여 이를 문자예술인 캘리그라피 분야에서 독자적인 가치와 자율성을 갖고자 하는 목적이다. 암각화나 고대 그림문자는 원고(遠古)시기 인류가 사회
▲강화 동검도 갯벌에서 먹이 사냥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두루미들<사진=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겨울의 진객 두루미를 탐사하기 위해서 서해안과 서울에 눈이 왔던 지난 19일에 강화의 동검도를 찾았다. 두루미는 인천광역시에서 1980년 초반에 시조(市鳥)로 지정될 정도로 예전엔 인천 서구 경서동과 연희동 갯벌에 제법 많이 찾아들었습니다. . 따라서 인천의 지명중에 두루미의 한자 이름인 학((중국에선 학.鶴, 일본에선 단정학.丹頂鶴)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송학동' '선학동' '문학동' '선학동' '학익동' 등 동네이름과 '문학산' '승학산'등 산의 지명이 두루미와 관련이 있다 하겠다. 허나 그 갯벌(경서동, 연희동 주변)들이 대규모로 매립 되고 간척사업등으로 두루미는 찾아 들 곳을 잃어 한동안 뜸하다가 2000대년초부터 강화 동검도 주변 갯벌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검도의 연륙교가 놓아지면서 잠시 주춤했던 갯체수가 연륙교를 해수가 통과할 수 있도록 개선한 후 다시 조금씩 생태가 복원되기시작하면서 최근엔 30여마리까지 관찰 되고 있다. 강화의 두루미들은 밀물과 썰물을 잘 이용해 갯지렁이나 작은털통게등을 잡아
안양(安養)땅에 법음(法音)을 전하는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안양(安養)땅에 법음(法音)을 전하는 안양시 석수동의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사진=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경기도 안양시의 안양(安養)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 (安養寺)에서 유래되었다. 신라 효공왕 4년(900년)에 궁예의 후예인 왕건이 금주(시흥)와 과주(과천)등의 지역을 징벌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산꼭대기의 구름이 5가지 빛으로 채색을 이룬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살피게 했다. 구름밑에서 능정(能正)이란 노스님을 만났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왕건의 뜻과 같으므로 이곳 예술공원 근처에 (만안구 석수1동 산 2번지 일대)에 안양사(安養寺. 지금은 폐사됨)를 창건하게 되었다. 불교에서의 안양(安養)은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다는 곳으로 불자들이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서방정토로 곧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안양시에 사는 시민들은 극락생활 누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예술공원
아파트 단지내 가장 작고 귀여운 민불신앙의 마애동자불▲서울 성동구 향토유적 제2호인 마애불<사진 =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아파트 단지내에서 볼 수 있는 마애불(서울시 성동구 향토유적 제 2호)이 있다. 서울 왕십리 KCC스위첸 아파트내에 조성된 아담한 공원엔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있는데 그 바위에 작은 감실을 파고 그 안에 아기동자를 새긴 마애불이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상왕십리에서 하차하여 KCC 스위첸 아파트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인 아파트 앞에서 내려 경비실( 마애불 볼러 왔다 하면 통과 시켜준다)을 통과해 101동 왼쪽으로 돌아 올라 가면 공원이 나온다. 이 공원은 마애불을 보존키 위해 아파트이 마련 했나 보다. 이 곳은 원래 안정사라는 절이 있었던 자리였다. 안정사는 신라 흥덕왕 2년(827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고찰로써 조선시대 무학대사(1327∼1405)가 이 사찰을 중건하고 7일간 기도하다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을 접하고 경복궁 터를 정했다는 전설과 함께 어느 날 꿈에 앞마당을 발로 디뎠더니, 그곳에서 푸른 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눈을 뜬 무학대사는 ‘푸를 청(靑)’에 연
피안의 세계가 돌아오면 눈이 열릴까?▲삼존불상의 눈이 파여있어 안타깝다.<사진= 김재필 기자> (시사1=김재필 기자)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진 영주는 소백산 자락에 터를 잡고 신라시대 경주 다음으로 불교가 성행했던 제2의 불국토가 아닌가 생각 될 정도로 봉우리들의 이름이 비로봉, 연화봉, 국망봉등이 있으며, 문수리라는 지명등에서 보듯 불교와 밀접한 삶과 불교 유적이 많은 지역이다. 봉화 북지리 마애불 탐사를 마치고 영주에 들어섰을 때는 단풍이 쇠락해지는 늦가을의 오후 햇살이 잔잔하게 서천(영주를 남북으로 가로 지른 川)에 내리 앉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애불들이 높은 산이나 호젓한 마을 뒷산에 위치 해 있듯 가흥동의 삼존불도 내성천의 지류인 서천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돌아 흐르는 지점의 남동쪽으로 향한 야트막한 언덕에서 예천쪽으로 나가는 28번 국도를 달리는 차들과 서천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 주위의 옛 지역명은 ‘한절마(大寺洞)이다. 이름에서 유추 해 보건데 지금은 관공서 및 아파트등이 들어선 시가지가 됐지만 마애불이 조성 됐던 신라시대엔 큰 절이 있었던 지역으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큰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불탑이나
이 길의 끝은 어디입니까?▲구름위의 동화사 마애여래좌상<사진 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지인의 전시가 대구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축하도 할겸 동대구행 KTX를 탔다 그러나 나의 또다른 목표는 구름 위에 앉아 있다는 동화사 마애불을 만나는 것이었다. 마애불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혼자였는데 오늘은 대구에 사는 화가와 경주에서 달려 온 사진가와 함께 하여 호강 하는 여정이 되었다. 동화사는 서기 93년(신라 소지왕 15년) 극달(極達)이 세운 유가사(瑜伽寺)를 832년(흥덕왕 7년)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건(重建)한 사찰로 이때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 동화사(桐華寺)라 개칭하였다고 전해지는 이 사찰은 원효와 의상이 수도하였던 곳으로 하늘과 땅의 경계를 그어놓은 봉우리마다 부처의 대자대비한 법음이 대장경처럼 펼쳐져 있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합창되어 들려오는 푸른 계곡마다 옛 신라의 화랑정신과 삼국통일의 정기가 서려 있는 신라의 작은 불국토라 할 수 있는 높이 1,100여미터의 팔공산에 봉황의 기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동화사엔 두 곳의 입구가 있다. 동화문과 봉황문이다. 전에 촬영차 몇 번 왔을 때마다 동화문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사진 =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경주 남산의 7대보물은 ‘삼릉계곡 석불좌상’, ‘마애관음보살상’,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칠불암 마애불상군’ ‘삼릉계곡 선각마애육존불상’,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등이다. 경주 남산에는 신라의 경명왕, 신덕왕, 아달라왕의 큰 무덤이 있는 곳이 있는 삼릉계곡이 있다. 삼릉계곡의 선각마애육존불상을 탐사를 마치고 육존불이 새겨진 바위 왼쪽 위로 400여미터를 올라 가니 높이 10여미터의 큰 바위가 나타난다. 잠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 올려다 보니 가로로 중간 부분을 끌로 판 듯 갈라진 위치에 작으나 위엄 있게 앉아 있는 선각여래좌상이 보인다. 방위계를 보니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대부분의 마애불은 동쪽이나 남쪽을 향해 있는데 드문 경우다 라고 생각하면서 자세히 보니 전체가 세련되지 못한 수법의 선각으로 단순하게 처리한 신체 위에 돋을 새김으로 얼굴만 도드라지게 표현한 도특한 기법으로 조각 되었다. 올라 올 때 언뜻 보니 위엄 있으나 못나 보였는데 다가서서 자세히 보니 눈읏음 치는듯 한 실눈, 우뚝하고 두리뭉실한 코, 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