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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마애불과의 만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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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을 뛰어 넘는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

 

(시사1 = 김재필 기자)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 마누라가 짱돌을 쥐어박을라고 벼르고 있구만유.근데 이 산신령 양반이 가운데서 계심시러 본마누라가 돌을 던지지도 못하구 있지유.”

 

위의 말은 1959년 4월, 오랫동안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연재(然齋) 홍사준선생이 충남 서산의 보원사터에 유물조사 온 길에 지나가는 나무꾼에게 "이 근처에 불상이나 사람이 새겨진 바위가 없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나무꾼이 한 대답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인근 사람들에겐 본존불상(280cm)은 산신령, 우측 제화갈라보살상(170cm)은 본마누라, 좌측 미륵반가사유상(166cm)은 작은 마누라로 보였던 것이다.

 

이로써 그 마을 인근사람들만 알고 있었던 도장바위(印巖)에 새겨진 강댕이골 산신령은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우리나라 최고의 마애불인”서산 마애삼존불” 로 다시 태어났다.

 

규모는 본존상의 높이가 2.8m 정도로 그리 크지는 않다.

홍사준 선생은 이를 즉각 국보고적보존위원회의 이홍직(李弘稙), 김상기(金庠基) 교수에게 보고하였으며 위원회에서는 그해 5월 26일 당시 국립박물관장 김재원(金載元) 박사와 황수영(黃壽永) 교수에게 현장조사를 의뢰하였고 조사단은 이 마애불이 백제시대의 뛰어난 불상인 것을 확인하였다.

 

이 마애불은 조성 된지 1,400여년이 지났건만 보는 이에게 석공의 숨결이 지금도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게 잘 다듬어진 바위면 가득히 새겨져 있는데, 조각기법이 번잡하지 않고 간결하게 형상을 잘 표현해 냈다.

 

또 언뜻 보면 소박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신체 각 부위의 비례감도 아주 뛰어난 데다 음각으로 파낸 선각의 깊이와 넓이가 신체 부분마다 달라 멀리서 볼 때 입체감이 잘 살아나 작품성도 뛰어나다.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왼쪽 관음보살상은 삼산관(三山冠)을 쓴 입상(立像), 오른쪽은 오른손을 뺨 위에 대고 의자에 앉아 있는 미륵보살은 반가상(半跏像)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파격적인 구도가 아닌가 싶다.

 

삼존상을 밑에서 받치고 있는 복련 연화대좌도 모난 데 없이 둥그스름한 볼륨감이 아주 좋고, 화려하지 않으나 우와한 격조를 갖추고 있다.

 

삼존상 모두 얼굴이 둥글고 풍만한 편인데 특히 본존상은 약간 두툼하게 올라 솟은 눈두덩, 가늘게 휜 반달형 눈, 후덕한 얼굴은 동시대 신라에서 조성된 ‘불곡 감실 마애불상’과 비슷하나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으로 다가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긴장을 풀고 근심이 사라지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상호부분을 확대촬영 하면서 자세히 보고 있노라니 차갑고 둔중한 바위에서 포근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찾아낸 백제인의 심미안이 놀라우며 그 잔잔한 미소가 1,000년의 시공을 넘어 만나 본 나에게까지도 시나브로 전해지는 것 같다.

 

삼불(三佛) 김원용 선생은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는데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러운 미소는 마음 좋은 친구가 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고 한 후부터 우리나라 마애불중 백미로 손꼽히는 ‘서산 마애불상’은 ‘백제의 미소’라는 애칭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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