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재나물이 양탄자를 깔아놓은듯 석모도 갯벌을 수놓고 있다.<사진 =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석모도 갯벌에는 요즘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나문재나물이 갯벌을 수놓고 있다. <강화도 갯벌에는 붉은 나문재나물이 자라는데 사람들은 그 나물을 경징이풀이라고 불렀다. .(연려실기술(인조조도고사본말)> 이는 병자호란시 한성판윤 김경징이 김포에서 가족 친지만 배에태워 피난시키고, 피하지 못한 백성들은 청나라 병사들에게 도륙되어 그 피가 강화 해변에 흘러들어나문재나물을 불게 물들였다고 하여 강화도에선 나문재나물을 “경징이풀”이라고 불렀다.는 슬픈 내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에 영화 <병자호란>을 떠 올리며 숙연해진 마음으로 셔터를 누루고 한참을바라보았다.
신작전 정기회원전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시사1 = 김재필 기자) 신작전의 정기회원전이 6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정기회원전에는 무엇보다도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관록있는 작가들의 대거 참여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김봉주 작가의 Modern Coexistence그중에서도 김봉주 작가는 ‘마릴린 먼로’라는 문화 아이콘의 대중적 이미지를 차용하여 그 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이 시대와 소통하고 하고 있다. 특히 ‘먼로 시리즈는 피상적으로 표현되는 단순하고 사실적이며 대중적인 이미지만을 주제로하지 않고 대중적 요소와 Pop Art와 차별된 새로운 회화적 표현을 시도하는 작가의 미적 경험을 바탕으로 재해석 자신의 화법으로 재창조(강수경 평론가)하는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백순임 작가의 명상화백순임 작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불안정) 사이에서 많은 괴리감과 허무를 느끼고 있다. 이걸 극복하고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명상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제 작품이 그림과 명상의 경계가 사라진 사례를 보여주고 또한 그림으로 인해 명상의 고요와 그 투명한 빛을 띤 것을
밤마다 주천강을 산책하는 부처님 -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74호)▲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74호)<사진= 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하략- 신경림 시 ‘주천강가의 마애불’중에서 우리나라의 무릉도원이라고 부르는 영월 무릉도원면 주천강가에 요선암이 있다.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요선암(邀仙巖)위에 물방울 모양의 큰 바위에서 밤마다 부처가 나와 주천강가에서 산책을 하곤 사바세계를 둘러보고 새벽이면 바위 속으로 들어간다고 신경림 시인은 말한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제로는 그의 작품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각 작품은 내가 작업을 하기 전에 이미 그 대리석 안에 만들어져 있다. 나는 다만 그 주변의 돌을 제거할 뿐이다.“ 불심이 깊었던 고려시대의 한 석공도 바위에서 부처를 보았을 터이고, 망치와 끌로 바위 속에서 3.5m의 큰 부처를 드러내어 모셨던 것이리라.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만 있던 부처는 모두들
수줍은 신라 아씨의 미소 - 충남 홍성 용봉사 마애불▲충남 홍성 용봉산 용봉사 마애불이 천년을 세월을 지키며 민초들의 위안과 희망을 전해주고있다.<사진= 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용과 봉황이 지켜주는 산자락에서 당신의 따뜻한 미소는 천년하고도 이백년이나 더 지나는 동안 나라가 몇 번이나 바뀌었어도 항상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사바세계의 민초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네. 코로나로 지친 봄이 흐느적거리며 지나가고 있는 오월말경에 용의 몸통에 봉황의 머리 형상을 한 ‘충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홍성에 있는 용봉산(381m)을 찾았다. 홍성과 예산은 인근의 서산과 태안을 함께 묶어 ‘내포(內浦 바다가 육지 안쪽까지 깊숙이 들어온 지역)지방’이라고 부른다. 경주의 남산이 신라의 불국토였다면 용봉산(381m)은 절터만도 27곳이나 되는 내포의 불국토라 불릴 만하다. 통일신라 전후로 고구려와 백제, 신라와 백제의 연속된 전란으로 피폐했던 백성들은 하루빨리 미륵이 하강하여 구원해주기를 염원했던 것이리라. 구룡대 매표소에서 표를 사면서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신계리 마애불과 용봉사 마애불을 일컬어 ‘자매마애불’이라고 한다.(나중에
시공을 뛰어 넘는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사진= 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 마누라가 짱돌을 쥐어박을라고 벼르고 있구만유.근데 이 산신령 양반이 가운데서 계심시러 본마누라가 돌을 던지지도 못하구 있지유.” 위의 말은 1959년 4월, 오랫동안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연재(然齋) 홍사준선생이 충남 서산의 보원사터에 유물조사 온 길에 지나가는 나무꾼에게 "이 근처에 불상이나 사람이 새겨진 바위가 없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나무꾼이 한 대답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인근 사람들에겐 본존불상(280cm)은 산신령, 우측 제화갈라보살상(170cm)은 본마누라, 좌측 미륵반가사유상(166cm)은 작은 마누라로 보였던 것이다. 이로써 그 마을 인근사람들만 알고 있었던 도장바위(印巖)에 새겨진 강댕이골 산신령은 ”백제의 미소“로 불
시간의 정지시킨 미소-경주 불곡 감실 마애여래좌상▲‘할매부처’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는 마애불<사진= 김재필 기자> (시사1 = 김재필 기자) 온갖 사물은 순간순간 변한다. 한순간도 머무는 것이 없다. 그것은 마치 꽃잎에 매달린 이슬과 같고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으며 모래로 쌓은 담과 같다. - 보문경 중에서 - 헌데 1,000여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있다. 사바세계를 내려다 보는 근엄한 모습으로, 또는 어머니와 같은 푸근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천상에서 막 내려와 속세의 대중을 향해 웃는 익살스런 모습으로 바위나 암벽에 돋을새김이나 선각으로 조성된 마애불이다. 몇년전 나는 사진촬영차 신라의 옛 수도인 서라벌. 경주에 가 볼 기회가 있었다. 이차돈의 순교로 급속하게 전파된 신라의 불교는 국교로까지 굳혀져 정치적으로는 ‘호국불교’로 문화적으론 ‘불교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다. 따라서 로마가 서양에서의 야외 박물관이라면 경주 남산 역시 동양의 야외 박물관 이라 견줄 수 있음에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교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남산은 길이 약8km, 폭 약4km의 산줄기엔 불상 80
▲ 올림픽공원의 들꽃마루에 황화코스모스가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