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조 조광윤은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진 오대십국 시기에 반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법을 무시하고 도덕과 윤리를 어지럽히는 통치자들을 증오했다. 송나라 이전의 중원(中原) 5개 왕조는 모두 이전 왕조의 법률을 답습하거나 자체로 법률을 제정했으므로 법도가 있는 왕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황제들은 남의 것을 답습하거나 모방했을 뿐 그들 자신에게는 법률의식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하찮게 여겼다. 몸에 독재자의 본성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그들은 자신이 바로 법이요, 살육이 바로 통치수단이었다.
노자는 일찍부터 전제의 폐단을 발견하고 법제관념을 주창했다. 그는 사건의 판결은 반드시 형법을 주관하는 사법부(司法府)에서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법관(司法官)이 아닌 자가 사건을 판결하고 법을 집행하면, 마치 기술 없는 자가 석공 대신 돌을 깎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석공을 대신해 돌을 깎는 자는 필연코 손을 다치게 된다.
오대(五代)시기의 통치자들은 천하의 주인행세를 하며 법 위에 군림해 사법부 대신 마음대로 형벌을 내리고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니 어찌 손을 다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통치자들은 결국 인심을 잃고 정권을 상실하는 무서운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조광윤은 법제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송나라 법전이 아직 편찬되기 전에 늘 신하들에게 법질서에 대한 인식을 깊이 가질 것을 요구했다.
송태조 조광윤은 어느 날 『상서(尙書)』 『상서(尙書)』: 『서경(書經)』을 이르는 말
를 읽던 중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을 읽게 되었는데 그는 크게 감탄했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네 명의 악당’ 사흉(四凶): 요순(堯舜) 시기의 네 명의 악당을 가리킨다.
제홍씨(帝鴻氏)의 아들 ‘혼돈(混沌)’, 소호씨(小嗥氏)의 아들 ‘궁기(窮奇)’, 전욱씨(顓頊氏)의 아들 ‘도올(檮杌’, 진운씨(縉云氏)의 아들 ‘도철(饕餮)’을 말한다.
을 꼼짝 못하게 했는데, 조목만 잡다한 근대의 법률이 어떻게 그것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송조(宋朝) 개국 이래 무고하게 중형을 받아 억울하게 죽은 자가 많을 것이오.」
조광윤은 순(舜)임금이 네 악당을 죽이지 않고 유배 보낸데 대해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는 당시 법망의 조목이 너무 세밀하고 지나치게 엄중한 처벌을 가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황제가 된지 얼마 안되어 법질서의 규범화를 요구하고 사건의 대소를 따지기보다 법규에 따라 처리하며 황제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처사는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어느 날 그는 후원에서 향로덮개를 하나 만들라고 명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덮개를 만들어 오지 않자 조광윤은 일부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향로덮개를 만들라고 명을 내린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안 가져 오는가?」
좌우의 신하들이 대답했다.
「황제의 조령(詔令)은 먼저 상서성(尙書省)에 보고해야 합니다. 상서성에서는 문건을 본부(本部)에 내려 보내고, 본부에서는 다시 본사(本寺)에 내려 보내며, 본사에서는 본국(本局)에 내려 보내고, 그런 다음 다시 상소를 올리게 됩니다. 황제의 조령이 확실하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비로소 제조에 들어갑니다. 조령은 여러 부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늦어지는 것입니다. 」
조광윤은 좌우가 이 일의 의미를 알게 된데 대해 기쁘게 생각했다.
그는 다시 재상 조보(趙普)에게 시험 삼아 물었다.
「내가 백성으로 있을 때 수십 전(錢)이면 향로덮개를 바로 살 수 있었소. 그런데 황제가 된 지금은 며칠이 지나도 향로덮개를 얻지 못하고 있으니 무슨 까닭이오?」
이에 조보가 아뢰었다.
「이는 질서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이 질서는 폐하를 위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폐하의 자손들을 위해 정한 것입니다. 자손들이 법을 어기거나 사치스런 물건을 만들어 재화를 낭비한다면 이 문제를 처리할 부서(部署)가 있어야 하고, 반드시 잘못을 지적해 간언하는 자가 있어야하므로 이러한 질서는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조광윤은 크게 기뻐했다.
「질서(秩序)는 참으로 묘한 것이오.」
‘질서(秩序)’란 오늘날 말하는 법조문이며 바로 법규이다. 이 일을 통해, 조광윤은 강한 법제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법규로써 사회질서와 위법 또는 불법 행위를 바로 잡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봉건 황제라는 조건 하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완전한 법치를 실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쨌든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고 법제 건설에서 그만의 특징을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