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민위방본(民爲邦本)’의 국가경영철학 구현 <28>

제5절 공평한 조세정책

4. 백성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과세정책

 

나라가 세금을 징수할 때 관리들이 더 이상 백성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송태조 조광윤은 과세제도에 대한 일대 개혁을 실시하기로 했다. 법적으로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는 폐단을 근절하고 제도화된 납세 메커니즘을 세우기로 했다.
968년(송태조 9년)에 그는 이러한 규정을 내놓았다.
「주정부의 관리가 현에 속하는 조세를 징수할 때는 공목관(孔目官) 공목관(孔目官): 주(州), 현(縣)의 내외아서관(內外衙署官)으로 재무를 주관
에 의해서만 청구할 수 있다. 주에서 납세감독관을 임명하는 방법을 폐지하고, 녹사참군(錄事參軍)에서 호적을 검증하고 판관(判官) 판관(判官): 절도사(節度使), 관찰사(觀察使)의 신하(臣下)
이 납세를 책임진다.」
이 규정으로 인해 국가가 세금을 징수할 때 제도적으로 상호견제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주와 현이 결탁하여 세금을 횡령하는 폐단을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송나라 초기에 우보궐(右補闕) 양주한(梁周翰)은 상소(上疏)를 올렸다.
「나라가 넓다 보니 혜택이 미치지 못한 곳도 있고 예의법도가 구비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곳까지 널리 보살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부과하는 세금이 과중하고 게다가 물품으로 환산해 할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품목이 다양하고 발송과 운송을 해야 하므로 어려움이 심각합니다. 후촉, 회남, 형남, 담주, 계주(桂州), 광주(廣州) 등은 이미 모두 폐하의 땅이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여러 곳에서 얻은 이익을 감안하시고 그 지역의 세금을 감면시켜 주신다면 백성들은 혜택을 입게 되고 훨씬 여유로워질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백성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의견이었다. 천하가 통일되고 사람들이 다 황제의 백성이 된 만큼 세금감면의 혜택도 골고루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광윤은 양주한의 건의가 많은 백성에게 이익이 되고 생산력 향상을 위하는 의견이라고 생각해 채택하고 실행에 옮겼다. 송태조 조광윤은 통일전쟁을 통해 5개 할거정권들을 평정해 광활한 땅과 수많은 인구를 가진 대송(大宋)제국을 구축하게 되었다. 국토가 확대되자 세금을 거두어들일 지역도 늘어났다. 그러나 새로 정복한 지역들은 장기간 그 전 정권들이 과중한 세금과 잡다한 조세를 부과해 왔기 때문에 그곳 백성들은 고통을 받는 상황이었다. 조광윤은 새로 편입한 지역에 대해 통일된 조세제도를 적용하되 몇 년씩 감세정책을 실시했다. 그리고 그곳 백성들이 부담 없이 생산에 종사할 수 있게 하며, 질서가 안정되고, 백성의 재력이 향상되게 했다.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것은 다 없애고 이전(以前) 정권으로부터 받아왔던 고통을 씻어 주었다. 백성을 아끼고 존중하는 것은 송태조의 치정(治政) 미덕이며 역대 여러 제왕들 중에서도 그에 필적할 만 한 자가 없는 것이다.

 

조광윤은 말로만 백성을 아끼는 황제가 아니었다. 그는 조령을 내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성과와 실행에 옮기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는 조령을 반포할 때마다 각 지역의 실천상황을 철저히 점검했다. 966년(태조7) 3월에 조광윤은 천협(川峽) 각 주(州)의 관리들에게 조령을 내렸다.
「전(前)의 후촉정권이 과다한 세금을 부과한 사실들을 조사하여 밝힌 다음, 모두 면제하도록 하라.」
이 조령을 반포한지 2개월이 지난 후 그는 천협 각 주의 관리들이 제대로 시찰하지 않고, 세금면제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격분한 조광윤은 또다시 조령을 내렸다.
「천협의 군부대 세무를 주관하는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세금감면조치를 철저하게 이행하고, 또한 내부 무역거래로 백성과 이권다툼을 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한다. 위반자는 법에 따라 처벌한다.」
그는 조령을 내릴 때마다 실행상황을 점검했고 안심되지 않으면 또다시 독촉하는 조령을 내리곤 했다. 그는 확실히 역대의 다른 제왕들과는 다른 정치적 특징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