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민위방본(民爲邦本)’의 국가경영철학 구현 <26>

제5절 공평한 조세정책

조광의의 장인이며 천웅군절도사였던 부언경(符彦卿)은 세금을 징수할 때 선여를 챙기는 방법으로 거리낌 없이 백성들을 착취하여 원성을 크게 샀다. 이것을 알게 된 조광윤은 대노하여 즉시 파면시켰다.
그는 곧 상참관(常參官)을 각지에 파견하여 징세사업을 감독케 함으로써, 국가재정의 손실을 막게 하는 동시에 탐관오리들의 착취로부터 백성을 보호했다. 이부낭중(吏部郎中) 윤식(閏式)은 조정에서 하양(河陽)의 여름세금 징수를 감독하라고 파견했을 때 선여를 챙겼다. 그는 1말(10되)에서 5리터나 더 많이 계산하는 바람에 고발을 당했다.
조광윤은 즉시 사람을 파견해 진상을 규명하고 그가 비록 많이 징수한 부분을 사적으로 챙기지 않고 조정에 납부했다 할지라도 이는 백성의 이익을 위하는 조광윤의 뜻에 어긋나는 처사이므로 즉각 강등(降等) 처분을 내렸다. 우위솔부관(右衛率府官) 설훈(薛勛)은 상영창고(常盈倉庫)의 세금을 감독할 때 창고의 관리와 결탁해 말〔斗〕로 더 많이 받는 수법으로 백성에게 해를 끼쳤다. 조광윤은 이 일을 알고 설훈의 관직을 파면하고 그를 기주(沂州)로 유배 보냈으며, 결탁한 창고의 관리는 사형에 처했다.
위의 윤식, 설훈 두 사람의 직책은 백성에게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지 못하도록 감독하는 임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황제의 민생정책을 무시하고 법을 어기며 함부로 계량기를 속여 백성에게 해를 끼쳤다.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격이었다.
결국 이들은 고발당하게 되었고 조정의 엄한 응징을 받게 되었다. 조세를 감독하는 자가 오히려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짓을 했으니 백성을 사랑하는 황제 조광윤이 어떻게 그런 자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 결과, 송나라 초기의 정치는 투명해졌고 관리들은 비교적 청렴하게 처신했다. 하지만 조광윤은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과중하게 조세를 부과한 부정을 발견하기만 하면 가차 없이 징벌을 가했다. 이러한 황제를 백성들이 우러러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공정과세를 위해 세무관리의 전지(轉地)근무제 실시

 

옛날부터 지방관리들은 승진이 잘 안 되어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니 점차 개인세력을 키우게 되었고, 권한을 이용해 사욕을 채우는 방편으로 작용했다. 세상을 통찰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발견한 조광윤은 이것도 지방관리들이 개인세력을 이용해 백성을 착취하는 하나의 폐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972년(태조13) 10월, 그는 또 다음과 같은 규정을 반포했다.
「각 주의 장원관(場元官), 양료사(糧料使)와 지방수비군 병사들은 3년 마다 교체해 다른 지방으로 전근한다. 관리들의 개인세력 형성을 방지하기 위해 한 곳에 오래 근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납세에 관여하는 관리를 전근시킴으로써 지방세력의 형성을 억제할 수 있었고, 중앙의 법령, 법규가 지방에서 관철되고 집행되었다. 이후의 역대 조정에서는 이 방법을 많이 따랐다. 이 제도는 군에도 활용해 군사병변을 방지하는 이중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