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민위방본(民爲邦本)’의 국가경영철학 구현 <25>

제5절 공평한 조세정책

 1. 공평과세를 위한 새로운 통일도량형 실시

 

 
나라의 경제정책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해야 한다. 조광윤은 도가(道家)의 인덕(仁德)사상과 유가(儒家)의 인애(仁愛)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백성들에게 이익 되는 것이라면 그는 다 받아들여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용했다. 건국 초기에 유가경전에서 합리적인 내용을 받아들인 조광윤은 새로운 통일도량형을 제정해 전국에 반포하도록 조령을 내렸다. 오대(五代)이래 할거정권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왕조가 빈번히 바뀌면서 전국의 도량형은 무질서하게 사용되어 경제발전에 큰 장애가 되었다. 조광윤은 즉위 초 각지에서 각기 다르게 사용하던 도량형을 폐지하고, 새로운 저울과 말을 제조해 전국에서 일제히 사용하게 하고 위조품을 엄히 단속하였다. 나라에서 통일도량형으로 세금을 징수하게 되자 주현(州縣)에서 세금을 징수할 때 도량형으로 간계를 부려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착취하던 폐단을 방지할 수 있었다.
 
후촉에서는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할 때 두 종류의 말(斗)을 사용했다. 백성들이 납세할 때는 큰 말을 쓰고, 나라에서 백성에게 공급할 때는 작은 말을 사용했다. 나라에서 조세를 징수할 때 사용한 말은 10리터(ℓ)짜리이고, 공급할 때 사용한 말은 8.7리터짜리였다. 이것은 후촉왕이 백성을 착취하는 수단이었다. 965년(태조6)초, 후촉을 평정한 후 한 신하가 이러한 납세방법을 송태조에게 보고했다.
같은 해 5월에 송태조 조광윤은 조령을 내렸다.
「후촉 땅의 각 주현은 일률로 새 도량형을 사용한다. 후촉의 옛 도량형을 폐지하고 일률로 10리터짜리 말을 사용해 입고와 출고의 도량을 모두 똑같이 통일한다.」
후촉백성들은 마음으로부터 송태조의 인덕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진시황(秦始皇)은 상앙(商鞅)이 정한 ‘형석장척(衡石丈尺)’을 기준으로 삼아 중국의 도량형을 통일했다. 진시황이 비록 폭정을 했으나, 도량형을 통일한 점은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사학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한 것은 천하의 모든 제도를 진나라의 기준에 맞추어 실시하려는 독재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송태조 조광윤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가 새로운 도량형을 내놓은 것은 완전히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독재의 성격을 띠지 않았다. 그러므로 큰말, 작은말을 없애고 통일적으로 10리터짜리 말을 사용하게 한 것이다.
 
나라가 통일된 도량형을 사용하는 것은 우선 지방관리들이 세금을 과다하게 징수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조치였다. 조광윤은 황위에 오르자마자 도량형을 통일시켰지만, 각지의 번진(藩鎭)들은 그의 이러한 백성의 이익을 염두에 둔 조치를 잘 따르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세금을 징수할 때 많은 사익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시기 지방관부에서는 항상 ‘개(槪)로 중앙조정에 납세하여 증일(增溢)을 남기고, 공공연히 초과 징수한 ‘선여(羨余)’를 챙겼다.” ‘개(槪)’란 ‘평미레’란 도구인데, 주현의 관리가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할 때는 말에 넘치게 알곡을 담았다가, 조정에 보낼 때는 ‘개(槪)’를 사용하여 ‘평말’로 계산하기 때문에 상당한 여분을 남길 수 있었다. 세무관리들은 바로 이 남긴 부분 ‘선여’를 챙겼던 것이며, 이는 지방관리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일종의 조세로 되었다. 그것은 조세를 창고에 저장하거나 운송할 때 생길 수 있는 손실을 구실로 삼아 공개적으로 세금을 더 많이 부과했던 것이다. 선여는 임의성이 크기 때문에 백성의 세금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관리들로부터 착취를 당하게 하는 폐단을 낳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