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민위방본(民爲邦本)’의 국가경영철학 구현 <23>

제4절 3대강 대운하 건설

“물은 모든 그릇에 담을 수 있되 고정된 형태가 없다. 대중이 싫어하는 곳에도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은 노자(老子)의 물에 대한 소박한 견해이다. “물은 만물에 이로운 것이고 만물과 다투지 않는다.” 인간이 있기 싫어하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바로 다투지 않는 것이다. 노자는 물을 의인화하여 다투지 않는 도덕관념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도가(道家)사상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온 송태조 조광윤은 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수리건설에서 큰 업적을 이룩한 제왕들 중의 한 사람이다.

 

우리나라도 현재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 주요 강을 둘러싸고 ‘대운하사업’이니 ‘4대강 개선사업’이니 하여, 여야 간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물 관리’가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손꼽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사업을 특정 정당이 선거공약으로 했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는 정치적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다거나, 반대로 특정 정권의 홍보수단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사업이 과연 국민에게 도움이 되느냐, 우리나라의 기후와 지리, 환경 등 제반 여건에 맞느냐,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냐,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군사적으로도 활용할 가치가 있느냐” 등이 논쟁의 초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가경영의 귀재 송태조 조광윤이 1천년 전 중국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3대강 운하사업’의 내용과 추진과정을 살펴보면서 차분하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으면 한다.

 

▶ 수도(首都) 변경(汴京)의 식량수송을 위해 3대강 운하 건설

 

960년 4월, 조광윤은 즉위 후 불과 3개월밖에 안되었을 때, 인부를 징발해 변하(汴河), 혜민하(惠民河), 오장하(五丈河) 등 세 개의 강을  준설하라는 명을 내렸다. 개국 초기에 여러 화급한 사항이 많았을 텐데 조광윤이 운하건설을 지시한 것을 보면, 그가 이 사업을 국가경영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송나라 도성 변경(汴京)은 평원지대로 나라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변경에는 군대 10만, 주민 1백만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물자의 소비량이 많았으며 식량만 보더라도 하루의 소비량은 1백만 근에 달했다. 그러므로 변경은 지방의 도움을 받아야 하루 소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당시 육로수송은 마차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도성의 민(民), 관(官), 병(兵)의 생활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식량운송은 정권의 존망과 연관되어 있는 큰일이었다. 사방으로 통한 수상운송을 이용해야만 경성(京城)의 공급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조광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건국 초기부터 그는 수리건설을 적극 추진하기 시작했다.
조광윤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나라의 수립은 군대에 의존하고, 군대의 생명선은 식량이며, 식량은 조운(漕運)을 기본으로 하고, 조운은 수로를 위주로 한다. 식량이 있으면 경성(京城)의 군사를 보존할 수 있으나 수로가 없으면 대중을 집결시킬 수 없다.」
이때 마침 경성에 온 오월왕 전숙(錢俶)이 조광윤에게 옥대(玉帶)를 공납했다. 조운(漕運)을 다스리고 있던 송태조는 옥대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 오월왕에게 말했다.
「짐(朕)에게는 이와 다른 띠가 세 개 있소. 하나는 변하요. 또 하나는 혜민하요. 그리고 오장하가 있소.」
이 세 줄기의 운하는 변경(汴京)의 서, 남, 동 세 방향의 수상운송로를 열어주었고, 나라의 대부분 지역들은 이 강들을 이용해 식량을 변경으로 수송함으로써, 변경의 군대와 주민들의 방대한 소비를 공급했다.

 

군사전략적으로 봤을 때, 송태조 조광윤은 세 강을 대외로 군사행동을 취하는 출구로 삼았다. 이 강들을 이용하면 어떤 방향으로 군사행동을 취하든지 변경(汴京)의 십만 대군은 수로, 육로로 병진할 수 있고 군수품의 운송에도 매우 편리했다. 따라서 빠른 속도로 전쟁을 끝내고 군수물자의 공급이 끊이지 않도록 할 수 있었다. 경제적 책략으로 봤을 때, 조광윤은 세 개의 ‘보배띠’를 송왕조의 3대 경제동맥으로 간주했다. 이 세 개의 운하가 있으면 각 지역에서 징수하는 세금을 수로를 통해 순조롭게 변경으로 운송할 수 있으며, 동시에 경성과 지방과의 경제교류를 활성화하여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이 세 강이 도성 변경에서 전국 각지로 통하는 수상운송로이었고, 수상운송은 당시에 가장 저렴하고 중요한 물자수송수단이어서, 이들을 어떻게 막힘 없이 잘 통하게 하느냐가 조광윤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송태조 조광윤은 이 3개의 강을 보수하여 남북을 잇는 운하를 개통시켜 만백성들의 찬양 속에서 번영을 이루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