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금군 고위직을 오래 공석으로 비워둔 후, 중급 장군 중에서 임명
봉건사회에서 정권을 튼튼히 지키려면 무력에 의존해야 하고 군대를 장악한 자만이 황제가 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군대는 반드시 강하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군대여야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역대 제왕들은 강력한 군대의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권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금군 고위장군들에 대한 인사단행을 신속하게 마무리한 송태조 조광윤은 “어떻게 하면 군대를 강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늘 승전보를 울리는 군대로 건설할 수 있을까?” 하는 중대한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군대를 정비함에 있어서 송태조는 많은 영명한 조치들을 취했다. 우선 그는 중앙군인 금군의 체제를 거의 해체하다시피 하여, 금군의 5대(五大) 고위직인 전전도점검, 전전부도점검, 시위마보군도지휘사, 시위마보군부지휘사, 시위마보군도우후 등을 장기간 공석으로 두었다. 이렇게 되자 금군의 고위장군들의 통솔권은 거의 상실된 반면, 황제는 보다 쉽게 금군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의 조치는 의도적으로 중급 장군들을 전전도지휘사, 전전도우후, 마군도지휘사와 보군도지휘사에 임명했다. 금군 고위직에 중급 장군들을 등용한 것은 조광윤이 금군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이 되었다.
한중빈을 전전도지휘사로 승진시킨 것은 조광윤이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 한중빈은 본래 철기우상(鐵騎右廂)도지휘사로서 중급 장군에 불과했다.
금군의 고위장군들의 병권이 해제되었을 때도 그의 병권은 보류되었다. 금군에서 그는 경력이 얕고 명성이 그리 높지 못하며 직급이 낮았지만, 일관성 있게 명령을 잘 수행하고 규칙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조광윤이 그를 등용한 요인이었다.
장경(張瓊)을 전전도우후로 승진시킨 것도 송태조의 주도면밀한 조치였다. 장경은 후주의 명장으로 용맹하고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으며, 조광윤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956년 3월 초하루 조광윤이 배를 타고 수춘호성하(壽春護城河)에 진입했는데, 성 위에서 화살이 비 오듯이 날아왔다. 아장(牙將) 장경이 재빨리 몸으로 송태조를 막았는데 그는 다리에 화살을 맞고 정신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 조광윤에게 있어서 이것은 영원히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