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쟁사에 길이 빛나는 저주대첩(滁州大捷)
조광윤이 통솔하는 군사들의 청류관 기습의 성공으로 남당의 대군은 모두 저주성으로 후퇴했다. 저주성을 사수하고 있는 남당군을 철저히 소멸하기 위해 조광윤은 또다시 병사를 이끌고 물을 건너 저주성 밑까지 추격했다. 이때 저주성으로 후퇴한 남당군은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조광윤의 용맹함에 떨고 있었다. 남당의 대장군 황보휘는 백전노장으로서 조광윤의 기습에 의해 패배를 당했으니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조광윤의 군대가 성 밑에 추격해오자 그는 성루에 올라가 조광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남몰래 돌연 습격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싸우려면 진을 치고 광명정대하게 싸워야 하지 않겠나? 무장이라는 이름에 치욕을 줄 순 없다. 그대가 성을 공격하려 하니 내가 성 밖에 나가서 각자 진을 친 다음 다시 한판 붙도록 하자!」
황보휘는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으로 가련할 정도로 적은 숫자의 후주군을 일망타진하려고 했다. 이에 병법을 잘 아는 조광윤은 일단 황보휘의 선전포고를 받아들이고 성 밖에 나와 진을 치도록 했다. 황보휘가 성 밖으로 나온 것을 본 순간 조광윤은 그가 미처 진을 치기도 전에 갑자기 말을 달려 남당군 속으로 뛰어들며 벽력같이 소리쳤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적이 되고 싶지 않다! 황보휘의 수급만 필요하다!」
천하맹장 조광윤을 두려워하던 남당군은 그가 돌진해오자 눈앞이 캄캄해지고 목숨만 부지하려고 저항하는 자가 없었다. 무인지경을 달리듯이 적 진영에 뛰어든 조광윤은 단칼에 황보휘를 베어 말에서 떨어뜨렸다. 황보휘는 머리에 큰 부상을 입고 생포되었다. 주장(主將)을 잃은 남당군은 뿔뿔이 도망쳤다. 바로 이때 점심때가 되어 저주성 내 여러 사찰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저주성 내에서 공포에 떨고 있던 다른 남당 주장 요봉은 종소리를 듣자 더욱 간담이 서늘해졌다. 조광윤의 용맹스러움에 놀란 요봉은 전 병력과 함께 항복했다. 그리하여 남당의 저주는 마침내 함락되었다.
저주에서 대승을 거둔 조광윤은 사자를 파견해 세종에게 황보휘를 비롯한 전쟁포로를 바쳤다.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황보휘는 들것에 실려 왔는데 그는 세종에게 말했다.
「제가 포로가 되어 항복한 것은 모시던 남당의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쌍방의 군대에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용감한 자이고 하나는 비겁한 자라는 것입니다. 제가 수차례 거란군과 싸워봤지만 이렇게 똑똑한 전사(戰士)는 본 적이 없습니다. 폐하의 조장군(趙將軍)은 용병술이 뛰어나고 과감하고 용맹스러워 가는 곳마다 적을 무찌르지 못하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조광윤의 천부적 군사재능에 대해 황보휘는 비록 적장이지만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오체투지(五體投地)할 정도로 탄복했다.
저주에서의 대승은 큰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후주군 주위에 도사리고 있던 위협을 제거하고 남당군의 반(反)포위망을 때려 부쉈다. 남당의 도성 금릉(金陵)과 수주(壽州)와의 연계를 차단하여 수주가 고립되어 수비군들이 절망감에 빠지게 했다. 이로 인해 남당조정은 크게 낙담하여 저항할 의지를 잃게 되었다. 회남전투에서 중대한 전기를 맞은 후주는 남당의 드넓은 회남지역을 탈취할 기반을 닦게 되었다. 또한 조광윤 본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다. 이로써 군사전략가로서의 위치가 더욱 확고하게 된 것은 물론, 명망을 크게 쌓게 되어 황제의 기반이 구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