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광윤의 기량을 시기한 동준회(董遵誨)
복주에서 왕언초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다시 길을 떠난 조광윤은 남쪽으로 내려가, 이번에는 호북(湖北)의 수주(隨州)로 가서 그곳 자사로 있는 아버지의 친구 동종본(董宗本)을 찾아갔다.
동종본은 반가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부친께서는 어떻게 지내시오?」
조광윤은 다소 안심이 되어 대답했다.
「부친은 곽위장군 휘하에서 절도사들의 반란을 토벌하고 계십니다.」
동종본이 다시 물었다.
「공자는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소?」
조광윤이 희망을 갖고 대답했다.
「이제 저도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관직을 얻어 자리를 잡고 싶습니다.」
마침 동종본이 기꺼이 그를 받아주어 수주에 일단 거처를 정했다. 문무를 겸비한 ‘준비된 무장’으로서 큰 뜻을 품고 있던 조광윤은 동종본 밑에서 관직을 얻어 큰 뜻을 펼쳐보려는 부푼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기보다 기량이 뛰어나고 그릇이 큰 사람을 보면 시기하는 자들이 있는 법이다. 당시 아버지 밑에서 군관 아교(牙校)로 있던 동준회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동준회는 아버지의 힘을 믿고 조광윤을 못살게 괴롭혔기 때문에 조광윤은 매번 그를 보기만 하면 피했다.
어느 날 동준회가 쫓아와서 조광윤에게 짓궂게 물었다.
「나는 자주 성터 위에서 자줏빛 구름을 본다네. 또 높은 축대에 올라서 검은 뱀을 보는 꿈을 꾸기도 한다네. 꿈속의 뱀은 백 척이나 되고 순식간에 용(龍)으로 변하여 동북쪽으로 날아가며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와 같이 천둥도 친다네. 이는 상서로운 일인가? 아니면 나쁜 일인가?」
그러나 조광윤은 일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어느 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병법(兵法)을 논하고 있었는데, 동준회가 하도 얼토당토않게 우겨대자 조광윤은 옷소매를 뿌리치면서 그만 자리를 떴다. 그리고는 동종본에게 작별을 고하고 수주를 떠나 발길을 동북쪽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동준회가 보았다던 자줏빛 구름도 점차 흩어져버렸다. 수주에 머물고 있었던 반년 동안 조광윤은 곁방살이의 괴로움을 톡톡히 당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큰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송태조 조광윤이 어느 날 중견 무장으로 있던 동준회를 편전으로 부르자 그는 지은 죄가 있는지라 바닥에 엎드려 죽음을 청했다.
조광윤은 좌우의 신하로 하여금 그를 일으키게 하고 물었다.
「그대는 지난날 자줏빛 구름과 뱀이 용으로 변하는 꿈을 기억하는가?」
동준회는 이에 대답을 못한 채 다시 엎드려 절을 올리면서 외쳤다.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얼마 후 동준회 휘하에 있는 어떤 병사가 ‘등문고(登聞鼓)’를 울려 그가 위법하게 집행했던 일을 10여건이나 직소(直訴)했다. 직소의 내용이 대단치 않다고 판단한 송태조는 다시 그를 불러 말했다.
「그대의 지은 죄를 이미 용서하고 공(功)에 대해 상(賞)을 주었는데 어찌 옛날의 악연(惡緣)을 생각하겠는가? 이번 일은 불문에 붙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행동에 각별 유념하라. 짐(朕)은 그대를 계속 등용할 것이다.」
동준회는 다시 엎드려 절을 올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송태조 조광윤은 그에게 물었다.
「그대의 모친은 안녕하신가?」
이에 동준회가 아뢰었다.
「모친께서는 아직 유주(幽州)에 계시는데 전란으로 오랫동안 모시지 못하고 헤어져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조광윤은 국경근처에서 살고 있는 백성에게 후한 상금을 주어 거란의 영토가 되어버린 유주로 보내 그의 어머니를 몰래 변경으로 빼내오도록 하여 동준회에게 보내드렸다. 동준회가 이에 너무나 감사하여 명마 한 필을 구해 외사촌 동생 유종(劉綜)을 시켜 조광윤에게 바치자,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 진주반용의(眞珠盤龍衣)를 벗어서 동준회에게 하사했다. 이에 유종이 아뢰었다.
「동준회는 폐하의 신하인데 어찌 감히 이 옷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조광윤이 말했다.
「짐(朕)이 그에게 나라 한 쪽의 국경을 맡기고 있으니, 괘념치 말게.」
일찍이 소의절도사 이균(李筠)이 노주(潞州)에서 반기를 들었을 때 조광윤은 동준회로 하여금 대장군 모용연소(慕容延钊)를 따라 이균을 정벌토록 명했다. 이균의 반란을 평정한 조광윤은 동준회를 마군도군두(馬軍都軍頭)로 승진시켜 그곳에 주둔케 하여 3년간 지키도록 했다. 963년(태조4) 그를 변경으로 불러 돌아오게 하고 산원도우후(散員都虞侯)로 진급시켰다. 그 후 조광윤은 968년(태조9) 서하(西夏)가 수시로 서북 국경을 침략하고 어지럽힐 때, 동준회를 통원군사(通遠軍使)로 임명하여 그곳을 지키도록 했다. 동준회는 서북방 국경수비대장으로 부임하게 되자 서하 쪽의 여러 부족장들을 불러서 송조정(宋朝廷)의 위엄과 은덕을 분명하게 알렸다. 이때 그는 양을 잡아 잔치를 베풀고 술을 따르면서 부족장들과 그 수하 병졸들을 성심껏 대접해 그곳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며 진심으로 탄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달이 채 안되어 그들이 또 다시 국경을 어지럽히자 그는 군대를 이끌고 서하국 깊숙이 쳐들어가 오랑캐 부락을 말끔히 토벌했다. 이에 조광윤이 동준회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고 나주(羅州)자사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