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세호! 내 친구 “오세호”를 생각할 때면, 늘 아련한 안개 속에 바람결 나부끼듯 천진스레 미소를 머금고 날렵하게 몸동작을 하는 “쎈돌이”가 떠오른다. 세호와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함께 죽을 둥 살 둥 유도(柔道)를 열심히 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리 짱짱하고 날쌔던 세호에게 30대중반 어느 날 갑자기 저승사자처럼 “하반신마비”가 찾아왔다. 보통사람이라면 이리 고통스러울 때 죽음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천길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어도 아찔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지 않고,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 하늘만 올려다보며 용감하게 “해피랜드(happyland)” 정복에 도전했다. 많은 어려움들이 그를 가로막았지만 결코 이에 굴하지 않고, 요즘 북쪽의 누가 좋아하는 장거리미사일처럼 날쌔게 날아가 “해피랜드”에 안착(安着)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고난이 없었다면 “해피랜드”에 올 수 없었다고 감사해 하면서, 그는 비슷한 고난으로 힘들어 하는 장애인들은 물론 외국인죄수들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를 방문해 위로하며 용기를 불어넣고 하나님께 인도해 기쁨과 감사와 행복을 찾아주는 은혜로운 장로님이 되었다. 겨울방학 때 귀국해 고동 오세호와 잊지 못할 추억
제2절 황제가 된 후 다섯 차례의 통일전쟁▶ 송태조, 남당의 도성 금릉성을 무혈 함락하기로 결정 남당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할 때, 군대의 규율을 강화하기 위해 송태조 조광윤은 특별히 보검 한 자루를 조빈에게 수여하며 말했다. 「부장(副將) 이하 장군의 명을 어기는 자는 모두 참수하도록 하시오.」 이로써 조빈의 절대적 권위를 강조하고, 마음대로 살육하는 등 전쟁 폭행을 저지른 장병들에 대해 참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 보검 때문에 부장인 반미와 부하 장병들은 겁을 먹고 감히 그를 올려다보지도 못했다. 조빈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곧바로 장강으로 진군해 남당 경내에 진입하자 소식을 들은 수비군들은 도주하고 말았다. 송군은 순조롭게 도강하고 도성 금릉을 겹겹이 포위했다. 금릉은 일체의 외부지원이 끊기고 남당왕 이욱은 고립된 성안에 갇히게 되었지만 성을 의지해 완강히 저항하며 투항하지 않았다. 이때 송태조 조광윤은 북한을 정벌할 때와 마찬가지로 백성과 병사들에게 사상자를 내지 않으려고 금릉성을 포위할 뿐 공격은 절대로 하지 말도록 조빈에게 신신 당부했다. 조광윤과 마찬가지로 선한 심성을 가진 조빈은 그의 지시를 깊이 터득하고 계속 인내하면서 공격을 개시
제2절 황제가 된 후 다섯 차례의 통일전쟁▶ 배로 부교(浮橋)를 만들어 장강(長江)을 도강(渡江) 이욱은 장강의 천연요새를 이용해 송군의 진공을 막으려 했고, 송군 또한 장강을 건넌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변화가 있게 마련이고 인간의 지혜 앞에서는 장강이라는 천연요새도 탄탄대로로 바뀔 수 있었다. 병법에는 “현지(現地) 사람이기 때문에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현지 사람의 우세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광윤은 바로 남당에서 살고 있는 한 사람을 이용해 남당이 의지하고 있는 장강이라는 천연요새를 격파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번약수(樊若水)라고 하는 선비인데, 남당의 진사시험에서 몇 번이나 낙방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실의에 빠져 있었다. 번약수는 우울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강변에서 낚시질을 하곤 했다. 송나라가 남당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대군이 또한 강북에서 발이 묶여 있다는 소식을 들은 번약수는 송나라로 가서 자신의 출로를 찾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송나라로 가자면 무슨 명분이 있어야 하겠기에 그는 좋은 책략을 고안해 가져가기로 했다. 마음을 정한 번약수는 장강의 채석기(采石磯)에서 낚시꾼으
이곳 폴란드는 어제까지만 해도 때아닌 눈발이 흩날리고 스산하게 비까지 내렸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죽여주게 화창한 날씨다. 강의 없는 날이면 늘 “방콕”인 내게 아들처럼 잘 하는 리차드가 크라쿠프에서 가까운 곳에 <제스와비체(Zesławice)>라는 멋진 호수가 있으니 싱그러운 햇볕 좀 쐬러 가잔다. ▲ 폴란드 제스와비체(Zesławice)호수를 알리는 입간판 아이구, 이게 웬 떡이야? 나는 모처럼 야외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고 생기(生氣)가 돌면서 애들처럼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호수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는 자동차로 크라쿠프에서 북쪽으로 10km정도 신나게 달려서 30분만에 제스와비체호수에 도착해 보니, 사실은 인공으로 만든 큰 “저수지”였지만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이 저수지는 놀랍게도 700년쯤 전에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그 이름은 폴란드애국자 지스와프(Zysław)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무튼, 따사로운 봄볕과 함께 상큼한 봄바람, 싸하면서도 향긋한 봄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드넓은 평원 한가운데는 아름다운 집들이 그림처럼 서있다. 무엇보다도, 넓디 넓은 저수지에는 백
제2절 황제가 된 후 다섯 차례의 통일전쟁▶ 송태조 조광윤, 오랜 기다림 끝에 남당 정벌에 나서다 송태조 조광윤은 천하를 통일하려 했고, 이것은 또한 당시 천하 백성들의 소망이었고 대세였다. 이미 천하의 대부분을 통일한 이상 남당을 그냥 둘 수 없는 일이었다. 두 번이나 사자를 보내 변경에 조배하러올 것을 요청했으나 이욱이 오지 않자, 조광윤은 인질을 억류하는 방법으로는 남당평정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당통치자가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통일을 거부하고 장강이라는 천연요새에 의지해 저항했기 때문에 조광윤은 부득이 공개적 군사행동을 동원하여 오랜 세월 동안 공을 들여 평정여건을 마련해 왔던 남당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남당정권과 다른 남쪽의 정권은 절강(浙江) 일대를 점거하고 있는 오월(吳越)이었다. 독립을 추구하는 남당의 이욱과는 달리 오월왕(吳越王) 전숙(錢俶)은 진심으로 송조(宋朝)에 순종했다. 조광윤도 그의 진심을 믿어 주고 성의를 보여 주었다. 조광윤은 공물을 헌납하러 온 오월국의 원수부판관(元帥府判官) 황이간(黃夷簡)에게 말했다. 「당신이 돌아가면 전숙더러 군사훈련을 다그치라고 일러 주시오. 이욱이 고집을 부리고 조정에 들어오지
제2절 황제가 된 후 다섯 차례의 통일전쟁▶ 잘못된 삶으로 수치스런 나날을 보내는 남당왕 이욱 970년(태조11) 초, 남한을 멸망시킨 송나라는 군대를 한양(漢陽)에 주둔시키고 수천척의 함대를 건조해 과거에 평정한 형남에 정박시켰는데, 이는 자연히 남당을 위협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남당의 한 상인이 송나라 수군이 형남에 정박하고 있는 사실을 이욱에게 알려주고 비밀리에 관병을 한양에 파견해 송나라의 이 방대한 전투함대를 태워버리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이욱은 감히 송나라에 도전장을 내지 못했다. 송나라의 군사적 압력 앞에서 이욱은 일찍이 국호를 없애고 ‘남당(南唐)’을 ‘강남(江南)’으로 불러줄 것을 요구했다. 970년(태조11) 1월 이욱은 또 의제(儀制)를 낮추고 ‘조서(詔書)’를 ‘가르침(敎)’으로 바꾸고, 이후부터 궁전을 더 이상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았다. 더욱 철저히 몸을 낮추기 위해 이욱은 자제들의 봉직을 낮추고 ‘왕(王)’의 명칭을 ‘공(公)’으로 개칭했다. 또 송조정(宋朝廷)에 금전 30만 냥, 식량 20만 석을 헌납함으로써 일편단심 오로지 한 황제를 섬긴다는 뜻을 표명했다. 남당왕이 스스로 명호(名號)를 낮추는 것은 사실은 자국의
크라쿠프의 비즈워강변을 거닐다가 갈매기떼들이 춤을 추듯, 퍼레이드를 하듯 다리위를 휩쓸며 날고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