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황권(皇權) 강화를 위한 ‘중앙집권제’ 확립 <33>

제6절 중앙행정기구를 ‘상호통제시스템’으로 개편 (03)

경력이 쌓이고 부단히 승진한다 해도 실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중앙의 임명과 파견에 달려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앙은 전국의 모든 주요 관직의 임명과 이동, 승진을 좌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임관제도가 실시된 이후 송나라의 관리들은 상서(尙書)가 된다 해도 지주(知州)로 파견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리하여 관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가 주는 이익을 향유할 수 있으나 장기간 권력을 장악하거나 세습하지는 못했다. 조광윤은 새로 통일한 지역의 관리들을 그대로 옛 관직에 두고 다만 권지(權知)를 파견했다.

송태조는 집정하면서 새로운 토지와 백성을 얻었는데 일체 조정과 알력이 생기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관리를 잘 임용하고 옛 관리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여겨 화목하게 대해준 결과였던 것이다.

 

조광윤은 ‘직권분리(職權分離)’제도를 시행하면서 대부분 관리들이 ‘전각(殿閣)’에서 임직하게 하고, 수시로 각처로 파견하여 실권을 행사하게 하며 구체적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

여기서 ‘전각’이란 정부 안에 설치하는 ‘고급 인재 풀(pool)’로서, 직위(職位)와 직무(職務)는 부여되지 않지만 일정한 직급(職級)을 부여하여 나라에서 수시로 정해 주는 업무를 담당하면서 낮은 봉급을 주는 제도였다. 이러한 임용제도를 실시했기 때문에 관리가 많아도 백성을 해치는 일이 없었고 중앙의 부담이 번다하고 무거웠지만 백성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관(官)과 직(職)을 달리하고’, ‘명(名)과 실(實)을 분리하는’ 임관제도는 실로 묘한 이점(利點)이 있었다. 즉, 관(官)과 명(名)만 가진 관리들로 하여금 실권자(實權者)들을 지도하고 감독하게 할 수 있었다. 조정에는 녹봉을 먹고 명예가 있으나 권한이 없는 전각에 소속된 인재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은 직책을 가지고 권한을 가진 관리들에 대해 잘못된 것을 지적하며 비판을 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서 행정권한을 쥐고 있는 실권자들은 감히 마음대로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인재들에게는 비록 적은 액수이지만 녹봉이 주어졌고, 나름대로의 직무가 있었기 때문에 실권자들이 감히 보복하거나 해를 끼치지 못했다. 이와 같이 실권 없는 관리와 실권 있는 관리 간에 상호견제하는 메커니즘이 형성됨으로써 정치와 행정의 청렴성을 보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를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도입한다면, 보다 투명성 있는 행정을 보장하면서 적은 봉급으로 고급 인력들의 높은 경륜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국가적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길러진 인재를 사장(死藏)시키지 않음으로써 일거에 두, 세 마리의 토끼를 잡는 효과를 거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송나라에서 실시한 이러한 조정에 대한 ‘비실권자(非實權者)에 의한 감독 메커니즘’은 아주 독특한 발상이었다. 실권자(實權者)가 임기제로 직무를 맡게 하는 것은 관리들이 장기간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권력에 의해 사익을 도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관리들이 직무는 있으나 권한이 없게 한 것은 첫째는 인재를 썩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실권자들에 대해 감독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조정과 재야가 상호견제하는 시스템은 조광윤의 절묘한 조치였으며 후세의 통치자들에게 좋은 교훈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