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황권(皇權) 강화를 위한 ‘중앙집권제’ 확립 <18>

제3절 금군(禁軍)을 개편하여 제도적으로 병권(兵權) 장악 (11)

 ▶ 후당(後唐) 장종(莊宗)이 오래가지 못한 이유

 

송태조 조광윤은 군을 엄격히 다스렸기 때문에 군에는 교만하고 횡포를 부리는 자들이 없어졌다. 조광윤은 군법을 가차 없이 집행하면서도 결코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았다. 한 예를 들면, 어느 날 조광윤은 대신 이승진(李承進)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30년 전에 후당 조정의 관리였었다. 조광윤이 그에게 물었다.

「후당의 장종 이존욱(李存勖)은 용맹하여 중원(中原)을 독차지하고 있었는데 시운이 오래가지 못한 (4년간 재위) 원인은 무엇이오?」

이승진이 아뢰었다.

「장종은 사냥을 좋아했고 또 병사들에게 너무 관용을 베풀었지요. 매번 근교를 순시하러 나갈 때마다 금군의 호위병졸이 꼭 말의 앞길을 가로막고 서서 “저희들이 추위에 떨고 있사오니 구제해 주옵소서!” 하고 애원했습니다. 장종은 즉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지요.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군기가 실종되고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은상을 무절제하게 베풀어 권위와 명령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조광윤이 무릎을 치면서 탄식했다.

「20년 동안 황하 양안에서 전쟁을 벌여 어렵게 천하를 얻었는데 군법으로 단속하지 못했으니 실로 애들 장난 같구려. 짐(朕)은 오늘 군대를 육성하고 있으니 은상을 아끼지 않고 베풀고 있지만, 만일 군법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검도(劍道)로 대령하고 있을 것이오.」

송태조는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여 “강산을 얻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강산을 지키기가 더욱 어렵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