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을 다스리는 두 번째 방법은 또 합리적이고 안전하게 병력을 배치하는 데서 구현된다.
봉건 가부장제의 전제체제 하에서 황제는 금군의 최고통솔자이며 금군은 사실상 황제의 호위병이며 경성을 지키고 출정과 수비를 위한 파수병이다. 그러나 금군은 20만 병력을 갖고 있어 황제가 절대적 통솔자라고 할지라도 이 대군을 어떻게 배치하느냐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송태조 조광윤은 금군을 배치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병변문제와 지방할거의 가능성을 먼저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20만 금군의 절반은 경성(京城)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지방에 분산 배치했다. 그리고 경성의 절반은 또 상호 견제하는 원칙에 따라 경성과 그 부근 지역을 3개 방어구역으로 나누어 병력을 배치했다.
황성 안에 병력을 배치하고, 경성 내에 금군 호위병력을 배치했으며, 경성 밖에 수십 리 되는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이렇게 하여 금군의 정예부대인 전전사 소속의 병력을 제어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조광윤은 “설사 경성에 경보가 울린다손 쳐도 황성 안에는 이미 수만 명의 정예군이 있는 것이다.”고 했는데 이것은 주로 정예부대에 의해 경성을 지키자는 의도였던 것이다.
시위마군과 시위보군은 각지에 주둔했다. 이 두 부대의 병력은 대체로 전전사 부대와 비슷하지만 지방의 상병(廂兵), 번병(蕃兵), 향병(鄕兵) 등 부대를 동원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병력은 경성의 병력보다 훨씬 많으며 만일 경성에 사변이 생긴다 해도 각지의 병력과 연합하여 제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병력배치는 경성 내의 병력과 경성 밖의 병력을 상호견제하게 했다 조광윤은 이와 같이 세심하게 고려해 병력을 배치했는데 역대 제왕들에게서는 실로 보기 드문 일이다.
군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세번째 방법은 ‘수비변경법(守備變更法)’ 또는 ‘경술법(更戌法)’제도였다. 그것은 금군을 각 수비지역에 교대로 배치하여 병사들을 한 지역에서 장기 복무시키지 않는 것이다. 통솔자인 장군은 병사들의 이동과 관계없이 장기간 한 곳에 머물면서 수비임무를 수행했다.
이 방법은 또 금군이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하는 식량과 마초가 풍족한 곳으로 금군을 이동시키고 가족들도 거느리게 하여 국경수비 또는 다른 지역의 수비를 교대로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병사들을 빈번히 이동시키는 ‘수비변경법’을 이용하여 “병사는 장수를 모르고, 장수는 소속 부대만을 거느릴 수 없는 국면”을 조성했다. 그 결과 군부 장군들이 군대를 이용해 중앙정권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방지할 수 있었고, 동시에 흉년에 굶주리는 백성을 징집하여 군에 입대시키는 제도를 실시하여 백성과 관리간의 모순을 완화시켰다.
‘수비변경법’은 조광윤이 군을 다스리기 위해 내놓은 기발한 아이디어다. 이 방법은 병변 예방을 위한 미연의 조치일 뿐 아니라, 병사들은 주둔지의 변경을 통해 각지의 산천지리를 익숙히 알 수 있고 각지의 어려운 상황을 서로 이해할 수 있으며 전투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외부에 나가 수비하는 날이 많고 군영에 있는 날을 줄이며 의식주를 충족하게 보장할 수 있었다.
병법에서 “미묘하여 흔적이 드러나지 않고 신비스러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듯이 조광윤의 군을 다스리는 방법은 소리 없이 관리하고 합리적이면서도 안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