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희이선생(希夷先生) 진단(陳摶)과 송태조 조광윤
조광윤이 황제로 등극할 때 화산(華山)에서 수도하고 있던 희이선생(希夷先生) 진단(陳摶)은 “천하는 이제부터 안정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희이선생(希夷先生)’이란 별호는 후일 송태종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고,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 없다.”고 한 도덕경의 말을 인용하면서 붙여주었다.
진단은 당말(唐末)에 태어나 오대시기를 거쳐 송태종 때까지 100세가 넘도록 살다간 도인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당시 왕들이 자주 등극할 때마다 그는 근심 걱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왕다운 왕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어느 날 흰 나귀를 타고 화음으로 놀러가던 진단은 행인에게 ‘조광윤(趙匡胤)’이라는 사람이 난세를 평정하고 통일해 송나라 황제로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야 ‘왕다운 왕’이 나왔다.”며 너무 기뻐 손뼉을 치면서 박장대소를 하다가 그만 나귀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화산으로 돌아가 은둔하고 송태조 조광윤이 불러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희이선생이 부름에 응하지 않았으나 조광윤은 허물로 삼지 않고 도리어 화산 일대의 세금징수를 면하도록 조처해 주었다고 한다.
이 고사(故事)를 조선시대 숙종 때 유학자이며 유명한 인물화가 윤두서(尹斗緖)가 진단타려도(陳摶墮驪圖)로 그렸는데 그 구성이 참으로 재미있다. 그 그림에 쓰여 있는 한시(漢詩)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希夷何事忽鞍徙 (희이하사홀안사)
非醉非眠別有喜 (비취비면별유희)
夾馬徵祥眞主出 (협마징상진주출)
從今天下可無悝 (종금천하가무리)
나귀에서 떨어진 희이선생은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는가? 그건 취함도 아니요 졸음도 아니니 따로 기쁨이 있었다네.
협마영(夾馬營)에 상서로움 드러나 임금다운 임금 나왔으니,
이제부터 온 천하에 근심 걱정 없으리라.
그림 속에는 세 사람이 있다. 하얀 나귀에서 미끄러지고 있는 복건을 쓴 선비 진단(陳摶)과 지나가는 청년, 그리고 동자(童子)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희한하다. 나귀에서 떨어지는 선비는 웃고 있고, 길 가던 청년은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그를 도울 생각은커녕 빙긋이 웃고 있다. 작은 동자만이 들고 가던 책도 내팽개치고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온 백성을 두루두루 살피는 조광윤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 신나서 춤을 추다가 나귀 등에서 미끄러지고 싶다.
진단과 송태조 조광윤이 얽힌 또 다른 전설 같은 이야기로는, 조광윤이 세상을 유랑하던 시절에 화산의 도인 진단을 찾아가서 암봉(巖峰)에서 내기바둑을 두었는데 진단에게 졌다고 한다. 그래서 조광윤이 황제가 된 후에 “화산 일대의 지역의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세금을 면제받으면서 화산은 도교(道敎)의 성지(聖地)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화산은 중국 북파의 중심지가 되어 도를 닦는 사람 치고 화산을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