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윤은 시대요구에 부응하여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진교병변을 통해 황제의 자리에 등극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황제에 오르더라도 이전 왕조와의 인연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하는 자가 없을 리 만무했다. 후주의 옛 신하들 중에 조광윤을 달갑잖게 여기던 소의군절도사 이균과 회남절도사 이중진 등 두 번진(藩鎭)이 끝내 도전장을 던졌고 한 차례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조광윤은 도량이 넓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비록 각지 절도사 중에 이균과 이중진처럼 그가 황제에 등극한데 대해 불복하는 자가 있었지만 “전쟁은 전쟁이고 평정은 평정”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속 좁은 사적 감정을 품지는 않았다. 두 명의 이씨(李氏) 절도사들의 반란을 차례로 토벌한 그는 내친김에 천하의 제후와 번진을 다 쓸어버리고 빛나는 ‘대송제국(大宋帝國)’을 세울 웅심을 갖게 되었다.
1. 소의군(昭義軍)절도사 이균(李筠)의 반란 평정
노주(潞州)의 소의군절도사 이균은 원래 완고한 자였다. 외지에서 절도사로 8년 이상 오래 근무했던 그는 자신의 세력이 강대하다고 여겨 공개적으로 송태조 조광윤에게 도전장을 냈다. 황제가 된 이상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 조광윤은 가능한 한 끌어안는 책략을 써서 이균의 지지를 얻어내려 했다. 일찍이 조광윤은 황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어 이균의 아들 이수절(李守節)에게 충고한 적이 있었다.
「짐(朕)이 천자가 아니었을 적엔 당신의 아버지가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이제 천자가 되었으니 짐(朕)에게 조금 양보하라고 이르시오.」
그러나 이균에게는 이러한 부드러운 방법이 통하지 않았고 송조 황제의 영도(領導)에 복종하지 않고 그 신하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고 나서 이균은 아장(牙將) 유계충(劉繼冲) 등을 인질로 북한에 보내 귀순한다는 뜻을 밝히고 북한의 지원출병을 요구했다. 동시에 군대를 출정시켜 택주(澤州)를 습격해 송나라의 자사(刺史) 장복(張福)을 죽이고 택주성을 점령했다.
이균에 대해 송태조 조광윤은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이 전쟁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부득불 준비는 해야 했다. 그는 먼저 선휘사(宣徽使) 구거윤(咎居潤)을 전주(澶州)에 파견해 거란의 남하를 방지하도록 했다.
노주단련사 곽진(郭進)에게 노주방어사와 산서순검(山西巡檢)을 겸하게 하여 출병지휘권을 부여함으로써 북한의 침범을 방어하도록 조치했다. 조광윤은 “적을 공격하려면 먼저 적의 공격을 방어해야 한다.”는 군사책략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균의 반란을 정벌하기 위해 조광윤은 시위마보군부도지휘사 석수신과 전전부도점검 고회덕 두 장군에게 5만 병력을 이끌고 이균이 주둔하고 있는 노주로 진군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전전도점검 모용연소는 본부 병마를 이끌고 동쪽에서 출정해 석수신, 고회덕의 부대와 합류하도록 명했다. 조광윤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병기, 차량, 마필로부터 군량과 마초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했다. 천리작전의 후군(後軍)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그는 호부시랑 고방(高防)과 병부시랑 변광범(邊光范)에게 전군전운사(前軍轉運使)의 직책을 맡도록 하고, 삼사사(三司使) 장미(張美)는 군량조달을 책임지도록 했다.
이때 장미가 조광윤에게 중요한 정보를 보고했다. 회주(懷州)자사 마영종(馬令琮)이 언젠가는 이균이 반기를 들 것으로 예측하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회주(懷州)에 충분한 식량을 비축해 놓았기 때문에 이균을 토벌하러 출정한 부대는 가까운 곳에서 군량을 공급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크게 기뻐한 조광윤은 마영종이 있는 회주를 자사주(刺史州)로부터 단련주(團練州)로 승급시키고 마영종을 회주단련사로 승격시켜 보다 많은 역할을 하도록 조치했다. 조광윤은 오정조(吳廷祚)를 동경유수(東京留守)로 임명하고 여여경(呂余慶)이 보조하도록 했다. 또 전전도우후 조광의는 태내도점검(太內都點檢)을 맡도록 하고 시위마보군도지휘사 한영곤은 병사를 이끌고 하양(河陽)을 수비하도록 명했다. 조광윤이 동생 조광의에게 당부했다.
「이번에 내가 친히 전장에 나가야하는데 승전을 하게 되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만일 이기지 못하면 조보에게 일부 군사를 하양으로 이동시켜 그곳을 수비하도록 말해주거라. 그런 다음 다시 다른 방법을 강구하도록 해야 한다.」
원래 전쟁 시에 “앞만 준비하면 뒤가 미흡해지고, 뒤만 준비하면 앞이 미흡해지고, 좌만 준비하면 우가 미흡해지고, 우만 준비하면 좌가 미흡해진다. 준비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은 곧 미흡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병법의 이치를 잘 알고 있는 조광윤은 준비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물론 병력을 분산시키면 힘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조광윤은 최악의 경우를 타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