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지저귄다
소를 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어났느냐
고개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
이 시조의 지은이인 남구만은 조선 후기의 문신(文臣)으로 벼슬이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다. 이 시조는 남구만이 벼슬에서 물러나 전원생활을 할 때 쓴 작품이다.
이 시조는 봄날 농촌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봄이 되어 할 일이 늘어나니 아이는 조금이라도 일을 덜하기 위해 게으름을 피운다. 하지만 아이가 할 일은 결국 아이가 다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아이에게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고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해는 05시 11분에 고갤 내밀었다.
이 시각이전에 눈을 뜬다는 것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렇듯 이 맘 때면 항상 이 시조가 떠 오른다.
초여름 이지만 햇빛의 열기는 유리창을 박차듯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커튼을 치지 않았던 터라 그 빛은 내리치는 채찍질과 같았다. 문득 바로 앞 근린공원에 갈 생각이 들었다.
공원에 나오니 모두가 노인들이다.
물론 나이가 많을수록 새벽잠이 없다는 것이 사실인 것은 분명하다. 젊은 사람들은 밤 늦게까지 공부나 일을 하든가 음주가무를 즐기고 노인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기 때문이란 추측이 든다.
앞서 적은 시조처럼 젊은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일까. 아님 노인들이 부지런해 진 것일까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가끔씩 아침 일찍 공원에 나오는 것은 생기있는 약수를 마시고 약수터에 옆에 가서 뜨끈한 손두부를 사서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초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공원엔 살구나무에 살구들이 가득하다. 마치 어느 계절을 향해 가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린 살구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가을이 온듯한 기분도 들었다.
버찌열매는 벌써 새카맣게 익었는 데 살구들은 이제 노랗게 햇살을 부비고 있다.
이 근린공원이 처음 생겼을 때는 근처 주민들의 바쁜 손놀림에 많은 살구들이 바닥을 떨어져 희생을 당했다.
사실 멀리서 보면 노랗게 보여도 이 살구는 제멋대로 익은 개살구 임에 분명했다. 한입 먹으면 그대로 뱉을 정도니 말이다.
노랗게 익기 전 살구는 매실과 비슷하다. 그래서 일부 어르신들이 매실이라고 여기면서 익지도 않은 살구를 따려고 가지를 부러트리거나 했다.
철이 언제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계절에 이 노란 살구들도 빛좋은 개살구가 아닌 참맛을 내는 맛살구로 태어나길 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떨어져도 나뒹굴어도 누군가 주워거거나 치우지도 않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