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은 내 나라”…‘안산 김씨 시조’ 김하준 씨 정착기

시사1 신옥 기자 | 다문화 사회 속에서 외국인이라는 경계를 넘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 있다. 25년 전 낯선 땅에 발을 디뎠던 청년은 이제 지역사회가 신뢰하는 사업가이자 봉사자로 자리 잡은 인물. ‘오벳’에서 ‘김하준’으로 이어진 그의 삶과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에 처음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1년이었어요. 20대 초반에 친구 소개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때는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여기서 한번 살아보자’는 막연한 마음이 컸어요.”

 

-한국에서의 초창기 생활은 어땠습니까?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사우나 청소, 벽돌 나르기, 포장 공장, 철거 현장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생존이 먼저였죠.”

 

-귀화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곳이 제 삶의 터전이 됐어요. 그래서 한국 국적을 선택했고, ‘안산 김씨’라는 새로운 본관도 만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싶었어요.”

 

-주변에서는 한국인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고요.

 

“하하, 그런 말 많이 들어요. 한국말도 오래 쓰다 보니 자연스러워졌고 농담이나 표현도 한국식이 됐죠. 이제는 파키스탄 음식보다 국밥이 더 생각날 때가 많습니다.”

 

-현재 중고차 사업을 운영하고 계신데, 어떤 철학을 갖고 있나요?

 

“차를 파는 게 아니라 신뢰를 판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의심도 받았지만, 거짓 없이 대하다 보니 단골이 생기고 소개가 이어졌어요.”

 

-사업은 어느 정도까지 확장됐나요?

 

“지금은 국내 판매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알바니아, 아랍에미리트, 아프리카 등 해외로도 수출하고 있습니다. 한국 중고차의 신뢰를 알리고 싶어요.”

 

-이주민들을 돕는 활동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언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아요. 통역을 도와주거나 차량 정비를 함께 해결해 주기도 합니다. 제가 도움받았던 만큼 돌려주고 싶습니다.”

 

-한국인 아내와의 결혼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요.

 

“처음에는 처가의 반대가 컸습니다. 외국인 사위를 받아들이기 어려우셨겠죠. 하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 제 딸이 같은 상황이라면 저도 걱정했을 것 같거든요.”

 

-지금 가족 관계는 어떤가요?

 

“지금은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이 됐습니다. 8살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고, 처가에서도 든든한 사위로 받아들여 주세요.”

 

-지역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신데요.

 

“현재 안산소방서 의용소방대 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역 안전을 돕고 외국인 상인들도 지원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은 점점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잘 살아야 다른 다문화 친구들도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