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도적 지원’이란 명분…‘혈맹의 가치’보다 무겁나

시사1 윤여진 기자 | 최근 정부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통해 이란에 5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인도적 상황 완화가 명분이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서 이번 결정이 과연 우리 국익과 안보에 부합하는 ‘최선의 수’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한미 동맹의 전략적 일체성에 균열을 낼 우려가 있다. 한국과 미국은 단순한 우방을 넘어 피로 맺어진 혈맹이다. 현재 미국은 이란을 중동 불안의 핵심 배후로 지목하고 고강도 제재와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동맹국이 적대 세력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 대상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자칫 동맹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엇박자로 비춰질 수 있다.

 

또 이번 지원은 국제 관계의 복잡성을 간과한 기계적 지원이다. 중동은 종파 분쟁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화약고와 같다. 이란에 대한 지원은 이란과 대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이나 다른 우방국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위험이 크다. 지금은 ‘인도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기보다, 우리 외교의 입지를 좁히지 않도록 극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시점이다.

 

지원 자금의 투명성과 실효성 문제다. 아무리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지원이라 해도, 경제 제재를 받는 국가에 자원이 유입되면 그만큼 이란 정부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낳는다. 결과적으로 이 자금이 인도적 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로 전용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이는 결국 우리가 의도치 않게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인도적 지원은 분명 숭고한 가치다. 하지만 국가 외교는 철저히 국익과 안보라는 우선순위 위에 세워져야 한다.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위상은 명분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고 정세 변화에 영리하게 대응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정부는 이번 지원이 가져올 외교적 파장을 엄중히 살피고, 향후 대외 정책에서 동맹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는 신중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