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변하(汴河) 준설(浚渫) 시 인부들의 고충을 덜어주다
당시 중원(中原)에는 하남(河南)의 영양(榮陽)에서 황하의 강물과 만나 동쪽으로 흐르는 한줄기 강물이 있었다. 이 강은 변경(汴京)과 귀덕(歸德)을 거쳐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안휘성(安徽城) 경내로 흘러들어 숙주(宿州), 영벽(靈璧), 사현(泗縣)을 거쳐 회하(淮河)로 유입되었다.
이 강은 송조(宋朝)시기에 변수(汴水)라고 불렀으며 각 지방에서 변경(汴京)에 공물로 바치는 식량을 실어 나르는 주요한 수로였다. 황하의 강물이 섞인 변수에는 모래 함량이 많았기 때문에 해마다 한 번씩 강바닥을 준설해야 했다. 당시에 변수의 수로를 준설하는 것은 나라의 큰일이었다.
지난 후주시기에 나라에서 수로를 준설할 때 필요한 인부는 각 지방에서 무상으로 제공했고, 그 인부들은 스스로 먹을 식량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이 거대한 공사는 실로 백성의 피와 땀을 강요하는 일이었다.
조광윤이 황제로 즉위한 초기에 변수(汴水)는 마침 또 준설해야 할 시기가 닥쳤다. 어떻게 수로의 준설작업을 시행하느냐 하는 것은 새로 수립된 송조정(宋朝廷)이 얼마만큼 백성의 민생고를 해결해 주고 백성들에게 삶의 동기를 부여해 주는가를 검증하는 과제였다. 송태조 조광윤은 민생의 어려움을 고려해 특별지시를 내려 인부들이 자체로 식량을 준비하는 규정을 폐지하고 인부들의 식량은 전부 나라에서 공급하도록 했다.
3. 주한(周翰)에게 장형(杖刑)의 맛을 보이다
주한(周翰)은 뛰어난 글재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그가 아버지 조홍은(趙弘殷)과 한 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조광윤은 주한의 재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된 후 그는 주한을 비단생산을 감독하는 능금원사(綾錦院使)에 임명했다. 그러나 그는 민력을 아낄 줄 모르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걸핏하면 금공(錦工)에게 장형(杖刑)을 가하곤 했다. 이것을 알게 된 조광윤은 몹시 화를 냈다. 그는 주한을 불러들여 질책했다.
「그대는 금공(錦工)의 몸에서 흐르는 피가 짐(朕)의 피와 같다는 것을 모르는가? 어찌 그렇게 독할 수가 있는가?」
그는 주한에게 장형을 치라고 명했다. 그런 다음 또 말했다.
「그대의 살과 금공(錦工)의 살이 다르지 않은데 어떤가? 장형의 맛을 알겠는가?」
금공(錦工)들은 이 말을 듣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조광윤은 거짓말하고 속이는 자들 징벌하고, 양심 없는 자들은 근신시키며, 약탈하고 잔혹한 짓을 하며 정의를 저버리는 자는 거리낌 없이 제거 했다. 그리고 교활하고 음험한 자를 그냥 두지 않았고, 나쁜 자들이 백성을 해치지 못하게 보살폈으며,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공공연히 잔혹한 짓을 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처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