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황권(皇權) 강화를 위한 ‘중앙집권제’ 확립 <22>

제4절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 한 잔의 술로 병권을 풀다 (01)

조광윤은 “어려운 일은 쉬운 데로부터 착수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어려운 일’인 병권을 쉽게 장악함으로써, 그 다음 해결해야 할 ‘쉬운 일’을 위한 조건을 마련했다.

961년(태조2) 7월 어느 날 저녁 조광윤은 황궁에서 연회를 열고 그를 황제로 옹립하는데 절대적인 공로를 세운 석수신(石守信), 모용연소(慕容延钊), 고회덕(高懷德), 왕심기(王審琦), 한영곤(韓令坤), 장영택(張令鐸) 등 금군의 고위장군들을 초대했다. 술잔이 세 순배나 돌고 모두 술이 거나하게 취해 흥이 무르익을 무렵 조광윤이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만일, 경(卿)들이 힘을 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찌 황제가 되었겠소? 경(卿)들의 공로와 은혜를 잊을 수가 없소. 이제 황제가 된 이상은 진정한 황제가 되고 싶소. 그런데 황제란 참 어려운 자리로구먼... 황제가 된 이후부터 나는 하루도 발 뻗고 편히 잠을 못 자봤소... 매사에 즐거움이 없고, 차라리 절도사 시절이 그리울 지경이오!」

석수신 등 무장들은 이 말을 듣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폐하께서 두 이씨(李氏)의 반란을 평정하여 이제 온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데, 무슨 연고로 편히 잠을 못 이루신단 말입니까?」

조광윤이 말했다.

「중국은 지난 50여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황제가 되었소. 지금도 황제가 되고 싶어 하는 자가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잖소?」

석수신과 기타 장령들은 이 말을 듣고 두렵고 당황스러웠다.

「폐하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천명(天命)이 이미 정해졌거늘 누가 또 감히 딴 마음을 갖겠습니까?」

조광윤이 말했다.

「설사 경(卿)들은 딴 마음을 품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랫사람들이 부귀영화를 탐내는 것은 못 막지 않겠소? 어느 날 경(卿)들에게도 황포(黃袍)를 씌워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싫어도 거절하지 못 할 것이오.」

조광윤의 이 말에 대경실색한 석수신 등은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그 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신(臣)들은 아둔해서 폐하의 뜻을 잘 모르겠사오니 어떻게 하라는 하교를 내려 주시옵소서.」
조광윤이 말했다.

「인생이란 마치 “흰말이 달려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白駒過隙>”과 같이 빠르고, 부귀영화도 잠시일 뿐이오. 짐(朕)의 생각은 경(卿)들이 병권을 내놓고 번진(藩鎭)의 절도사로 가 있는 것이 좋겠소. 땅과 저택을 보유하고 많은 재산을 늘려가면서 손자들의 재롱을 보면서 즐겁고 여유로운 말년을 보낸다면, 우리 군신(君臣) 간에 서로 의심할 일이 없겠소.」

석수신과 제 장령들은 비로소 황제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이튿날 그들은 아프다는 이유로 조정에 나오지 않았고, 각자 금군의 직무를 사임하겠다는 상소를 올렸다.

그리하여 송태조 조광윤은 고회덕을 귀덕(歸德)절도사로, 왕심기는 충정(忠正)절도사로, 장영탁은 진안(鎭安)절도사로, 나언괴는 창덕(彰德)절도사로 임명했다. 석수신은 마보군도지휘사를 유임시키면서 천평(天平)절도사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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