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황권(皇權) 강화를 위한 ‘중앙집권제’ 확립 <21>

제3절 금군(禁軍)을 개편하여 제도적으로 병권(兵權) 장악 (14)

 ▶ 많은 죄를 범한 저주(滁州)방어사 이한초(李漢超)를 용서하다

 

송태조 조광윤은 이한초(李漢超)를 관남순검사(關南巡檢使)로 임명하여 거란의 침공을 막도록 했다. 이어서 저주(滁州)에서 부과세가 많이 나오므로 그를 저주방어사(滁州防禦使)로 임명하고 저주의 세금으로 전쟁준비를 하는 데 필요한 경비로 충당하게 했다.

무장 출신 이한초는 많은 범법행위를 저질렀다. 그의 만행이 계속되자 관남(關南)의 백성들은 경성(京城)에 올라가 “그가 천민의 돈을 빌려 쓰고는 갚지 않으며, 백성의 부녀자를 빼앗아 첩으로 삼았다.”는 죄를 나열하면서 고발했다.

송태조는 백성들을 편전에 불러들어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위로해 주면서 천천히 물었다.

「이한초가 관남에 들어간 후 거란이 침입한 적이 있었소?」

백성들이 아뢰었다.

「없었사옵니다.」

송태조가 말했다.

「지난날 거란이 침입했을 때 국경수비대가 그것을 막지 못해 하북(河北)의 백성들은 해마다 거란인들에게 강탈당했었소. 그때 여러분들은 재산과 부녀자들을 보호할 수 있었소? 오늘 이한초가 나쁜 짓을 좀 했다 해도 거란인들에게 비교하겠소?」

그는 또 딸을 빼앗겼다고 고소한 자에게 물었다.

「집에는 딸이 몇이오? 어떤 사람에게 시집갔소?」

고소한 자가 일일이 대답하자 송태조가 말했다.

「그렇소. 다 촌부에게 시집 간 것이 아니요? 이한초라면 짐(朕)이 아끼는 신하요. 그대의 딸을 사랑해서 아내로 맞으려고 하는데 그에게 시집가면 뭐 손해 볼게 있겠소? 촌부에게 시집가느니 차라리 이한초에게 가면 부귀영화라도 누리지 않겠소?」

고소하러 왔던 사람들은 조광윤의 환대에 감격스러워했고 또 그의 얘기를 듣고 나서는 마음이 풀려 기쁘게 돌아갔다. 이한초를 고발하러 왔던 사람들을 돌려보낸 후 조광윤은 슬그머니 그를 불러 타일렀다.

「빨리 남의 집 딸과 재물을 돌려주고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시오!」

이한초는 송태조가 죄를 묻지 않자 감동해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이로부터 그는 저주(滁州)지역을 갈수록 잘 다스려 나갔다.

저주(滁州) 백성의 소송사건을 해결한 조광윤의 처리방식을 보면 그는 원칙성과 책략적 융통성을 두루 잘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먼저 소송을 낸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고 겉으로는 이한초를 두둔했지만 뒤에서는 그를 불러 잘못을 고치도록 타일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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