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사기구(軍事機構) 간 견제시스템 및 문관에 의한 군 통제
정권과 병권을 놓고 보면 평화시대에는 정권이 병권 위에 군림하고 병권을 통제한다. 그러나 비상시인 전쟁시기에는 왕왕 병권이 정권 위에 군림하고 정권을 좌우한다. 조광윤 시기는 중국통일을 위해 전쟁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평화를 유지하면서 전쟁을 해야 하는 복합적인 상황에서 정권과 병권의 관계는 비정상적으로 흘러왔다.
임동(林駧)이라는 한 신하는 정권과 병권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천하에는 두 가지 권리가 있는 데 그것은 정권(政權)과 병권(兵權)이다. 병권은 마땅히 분리하되 전횡하여서는 안 된다. 정권은 마땅히 독점하되 분리해서는 안 된다. 정권을 분리하면 모든 일의 통솔자가 없어지고, 병권을 전횡하면 필연코 사변이 일어나게 된다. 천하를 도모하는 자는 이 점을 잘 알아야 한다.」
임동이 말하는 정권과 병권의 관계는 평화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전쟁을 벌여 영토 확장을 시도하려는 시기에 알맞는 이론이다. 마침 송태조 조광윤이 그러한 입장에 처해 있었으므로, 임동의 이론을 나라와 군대를 다스리는 지침으로 삼았다.
뛰어난 지혜와 통찰력을 갖춘 정치가이자 군사가인 조광윤은 항상 그가 처한 시대의 상황에 맞춰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갔다. 그는 정권을 독점하면서 또한 병권을 독점하여 모든 일을 자유로이 처리할 수 있도록 군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진(秦), 한(漢), 당(唐) 이래 “병권을 분리하느냐? 아니면 독점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 제도적 장치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역사상 각 왕조의 병권운용 사례를 거울로 삼아 송태조는 병권을 추밀원(樞密院)에 맡기고, 추밀원에서 병적(兵籍)과 파병권(派兵權)을 관장하도록 했다.
한 사람의 능력에 한계가 있듯이, 아무리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난 황제일지라도 조정의 대사를 일일이 다 관여할 수 없으며, 친히 병권을 장악하고 있더라도 군의 일상업무를 다 처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추밀사(樞密使)는 재상 지위에 상당하므로 재상의 통제를 받지 않고 직접 황제의 명령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황제가 친히 장악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송태조 조광윤은 병권을 더 확실하게 분산시키기 위해 금군의 전전사, 시위사 등 2개 군사기구를 전전사, 시위친군마군사, 시위친군보군사 등 3개 군사기구로 기능을 분할했다. 3개 기구의 최고 지휘관의 이름은 각각 전수(殿帥), 마수(馬帥), 보수(步帥)라고 했다. 이리하여 송나라의 금군은 3개 군사기구로 나뉘어져 각자 병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이로써 군사체제가 정식으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