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충수의 세상을 밝히는 힘(12)] 조직문화를 바꾸는 성인지 리더의 역할

리더는 말하지 않아도 문화를 만들고, 행동하지 않아도 기준이 된다.

 

지난 7월, 내게는 특별한 달이었다. 육·해·공 3군의 심장부인 계룡대에서 각 군 수뇌부를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한 것이다. 더욱 특별했던 점은 각 군 참모총장들이 직접 참여해 장군단과 함께 조직문화 개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데 있다. 형식이 아닌 실질적 태도의 변화, 그것이야말로 리더십의 출발점임을 실감하는 기회였다.

 

리더는 말하지 않아도 문화를 만들고, 행동하지 않아도 기준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파워 인플루언서’라 부른다. '공군(육군) 조직문화와 성인지 리더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100분간 이어진 강의에서 내가 가장 강조한 것도 바로 이 ‘파워 인플루언서’인 리더의 책임이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피해자 입장을 이해하는 감수성’이다.

 

군 조직에서 지휘관은 폭력에 대한 예방–대응–조치 전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하나 소홀히 대할 수 없지만, 나는 특히 ‘대응과 조치’ 과정에서의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꼽는다.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2차 피해로 이어지기 쉽고, 이는 피해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절망을 안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보호의 출발점은 ‘이해’다. 성희롱·성폭력 피해는 성별, 연령, 직업, 외모, 성격과 무관하게 누구에게서나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와 위계질서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더 큰 취약성을 안긴다. 특히 특수한 위계가 형성된 조직 환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피해자의 공통적 특성이 자주 나타난다.

 

첫째, 권력관계의 약자이다. 예컨데 직장에서의 상사-부하 관계, 학교에서의 교사-학생 관계, 군대의 선임-후임 관계처럼 위계가 뚜렷한 구조에서는 권력이 침묵을 강요하고, 그 속에서 피해는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둘째, 자책과 죄책감이다. “내가 예민한 걸까?”, “내가 조심했어야 했나?” 하는 자문 속에서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탓하며 침묵의 늪에 빠진다.

 

셋째, 신고 주저와 침묵이다. “괜히 문제를 키운다”, “너무 예민하다”는 조직 분위기는 피해자의 입을 막는다. 신고는 커녕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일이 반복된다.

 

넷째, 정신적 트라우마이다. 불면, 불안, 분노, 무기력, 자존감 저하, 대인기피 등 피해자의 고통은 단순한 경험을 넘어 삶 전반을 파고든다.

 

다섯째, 반복 피해의 가능성이다. 가해자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거나 권력관계가 변하지 않으면, 피해는 다시 반복된다. 침묵은 피해자를 더욱 위험에 노출시킨다.

 

여섯째, 말하지 못하는 상처이다. 부끄러움, 수치심, 불신. 피해자들은 가까운 가족과 동료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한다. 그 고요한 절규에 조직은 응답해야 한다.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의 특성은 결코 “약해서”가 아니다. 이는 사회구조적인 힘의 불균형과 문화적 편견 속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나타나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태도 변화와 침묵하지 않는 주변인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우리 조직 내에서 더 이상의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 조직문화를 바꾸는 힘은 조직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며, 그 중심에 파워인플루언서인 리더의 역할이 막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리더는 말하지 않아도 문화를 만들고, 행동하지 않아도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