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길원옥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박근혜 정부 때 피해자 동의 없이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 문서를 공개하라 촉구하며 "죽기 전에 꼭 진실을 밝히기를 원한다"라는 손편지를 법원에 제출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지난 16일 향년 97세로 세상을 등졌다.
고인은 1998년 일흔의 나이에 용기를 내 전쟁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렸다. 이후 여성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로서 미국과 중국 심지어 일본 등을 찾아 역사를 알리고 '성노예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19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의기억연대 주최 제1688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길원옥 할머니에 대한 추모제가 열렸다. 많은 참가자들이 차례로 고인에게 꽃 한 송이씩을 올리며 추모와 평화를 다짐했다.
추모사를 한 강태성 평화나비 네트워크 활동가는 “길원옥 할머니께서는 살아계실 적 수요시위에 나오시면 어린 학생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며 “어린 나이에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일제의 전쟁범죄에 짓밟혔던 할머니었다. 이제 우리 대학생들이 '길원옥'이 되어 이 땅에 평화를 이루고, 할머님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톨 <노래하는 집, 길원옥> 작가는 “당신은 따뜻한 담요가 되어 세상을 감싸주었지만, 당신은 무엇을 더 걸칠 생각없이 충분하다 했다”며 “당신의 노래는 맺힌 ‘한’을 풀어주기도 했다. 어쩌면 끝없는 지옥에 머물러, 반복되는 고통에 머물러야 하는 감정에 자유를 주는 법을 터득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당신을 조금은 닮아가 보았다”고 말했다.
호랑 정의연 전 활동가는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그 거리만큼 멀리 느껴져야 할 할머니의 소식이 왜 이리 가깝게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다”며 “따뜻한 곳에서 나비처럼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봄이 오면 더 좋은 곳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일본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 전국행동은 추모사를 통해 “할머니가 그렇게 원하신 평화의 나라,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야 할 우리들의 과제”라며 “할머니의 뜻을 우리가 꼭 이어갈테니, 이제 고단하셨던 이 세상의 일들 내려놓고 편히 쉬시라. 일본에서 역사인식을 바로 세우고 일본 정부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명백하게 인정하도록 전국행동은 앞으로도 계속 투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1부 추모제가 끝나고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제16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주간보고를 했다.
이를 통해 “길원옥 할머니. 어렵게 용기 내어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고 세계 곳곳을 돌며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셨건만, 그 모든 민망하고 서글픈 상황을 보시게 해 정말 죄송하다”며 “길원옥의 시간, 길원옥의 소망, 길원옥의 사랑, 길원옥의 용기 있는 실천, 이제는 우리가 이어나가겠다. 그러니 부디 고통도 슬픔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라”고 말했다.
전혜림 역동연 소속 서울여대 사다리 회장은 “오늘은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뒤 시민들이 매일같이 거리로 나와 광장을 지켜온지 벌써 76일째(2월19일 기준)이다”며 “12월은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나날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내란수괴 윤석열을 위해서 서부지법을 불법점거한 폭동사태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었다”며 “공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헌법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그들의 뒤엔 윤석열이 있다. 현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재판을 받는 중이지만, 여전히 국정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가치를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훼손시키고, 일상을 빼앗은 윤석열과 이에 동조하는 모든 세력을 규탄하고 연대의 광장에서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며 “아주 오래전부터 매주 수요일, 이곳을 지켜오셨던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자 여성운동가이신 고 길원옥 할머니의 삶과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할머니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전했다.
오는 3월 대학에 입학할 조현수 성공회대 25학번 학생은 “이제 생존자 할머니는 7분 남았다. 하지만 저는 생존자 할머니께서 돌아가신다고 해서 우리의 저항의 역사가 끝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할머니분들의 의지를 기억으로서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의 ‘위안부’ 문제 연구자인 수 즈량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41만명으로 추측되며 그중 14만 2000여명이 조선인이라고 한다”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41만명의 여성들이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국가가 여성의 인권을 비참하게 유린한 41만개의 사건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리타 히로키 일본 유스포럼 후쿠오카 활동가 시마다 켄지씨는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차별과 마주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며 “부디 일본 정부와 성범죄자, 그리고 그 배경에 있는 우리들은 그 용기를 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하루 빨리 그 용기를 가지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을 향해 나아가고, 사과와 그 책임을 지는 일본 정부가 돼 주시라”며 “성차별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맞서야 할 문제이다. 할머님과 성폭력 피해자가 치유되기를 바란다. 저도 그 용기를 가지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열린 제1688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 1부는 길원옥 할머니 추모제, 2부는 수요시위로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