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영화는 산악영화지만, 가족애를 포함한 휴머니즘이 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세계 최초 8천미터 16좌 완등을 세운 산악인 황정민(엄홍길), 그에게 그런 완등을 하게 끔 조언을 해준 이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산을 오르겠다는 생각으로 그 고집만으로도 세계 산악사를 빛낼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산은 정복하는게 아닙니다. 단지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렇듯 그에게 있어 산은 오르고 머무르고 그리고 또 오르는 것이란 점이다.
그의 아성에 도전하듯이 나서는 고 박무택 등의 후배들에게도 산악인으로써의 체력을 테스트 하면서 인간적인 배려도 냉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에레베스트 산맥인 히말라야를 도전하는 산악인들은 한마디로 메스컴의 집중적인 포커스를 받는다. 그리고 산악 스폰서등이 그것을 이용해서 마켓팅 홍보효과를 노리면서 한순간의 매출 극대화를 가지게 되고, 그만큼의 브랜드 효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때는 이것이 너무 상업적이라는 비난도 있었고, 그런가 하면 가슴에 태극기를 붙히고 등반해서 인간한계를 극복한 인간승리이자 국가의 이미지를 세계에 홍보한다는 취지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악인들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산을 오르는 것이 나의 모든 번뇌와 자아의 탈출구로 여길만큼의 힘이 생겨서 도전한다고 했을 것이다. 또한 산이 있으니까 오른다. 아님 저 산이 나의 잠재된 희망을 일깨우니까 나는 오른다. 그것이 아닐까.
그렇다. 산은 그 어떤 상징물 보다 위대하다. 산이 없는 나라도 있고 그래서 늘 아쉬움만이 흐르는 곳도 분명 있다는 것이다. 한국엔 산이 많다.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산이 많고 많다. 그래서 언제나 생노병사에 시달리는 인간들의 희망을 살펴보고 있으며, 언제나 그자리에 그곳에서 머물고 있다.
영화 히말라야에서 황정민(엄홍길) 대원이 처음 했던 고뇌는 산을 오른다는 도전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으며, 가족도 형제도 없는 냉혹하지만 고집 센 모습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를 따르는 후배들의 등장에 조금은 당혹스러움을 내비쳤고, 조금씩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후배임을 자청했던
고 박무택 대원의 실종사고에 따른 자책감에 결국엔 괴로워하다 마침내 참여했던 대원들과 같이 모든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그의 시신이라도 찾기위해 사력을 다하면서 히말라야에 몸을 던진다. 산을 오르는 자는 산에서 머물고 산과 함께한다. 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라 그의 최종적인 목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