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김기봉 기자 | 요즘 청년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열심히 살아도 빚만 남는다”는 자조다. 과장이 아니다. 한국은행 통계는 이미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자산보다 빚이 많고 소득의 4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쓰는 ‘고위험 가구’ 세 집 중 한 집이 2030 청년층이라는 사실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래 세대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청년들은 ‘영끌’이라는 단어로 설명됐다. 치솟는 집값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대출을 최대한 끌어모아 자산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지금 아니면 평생 기회가 없다”는 불안이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식자 상황은 급변했다. 자산은 줄고 빚은 남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취업시장 역시 청년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취업자 증가세는 둔화됐고 ‘쉬었음’ 상태의 청년은 빠르게 늘고 있다. 소득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부채 부담까지 커지면서 일부 청년들은 다시 고위험 투자로 눈을 돌린다. 손실을 만회하려는 선택이지만, 이는 또 다른 위험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정치권은 이런 현실 앞에서 여전히 익숙한 장면을 반복한다. 한쪽은 과거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지적하고, 다른 쪽은 현재 경제 상황의 책임을 되묻는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중요한 것은 책임 공방의 승패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다.
청년 부채 문제는 특정 정부 하나의 실패로 설명하기 어렵다. 급등한 자산시장, 불안정한 노동시장, 금융 완화와 긴축의 급격한 전환, 그리고 미래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복합적으로 쌓인 결과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원인을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청년 정책 역시 ‘지원금’과 ‘대출 완화’ 사이를 오가는 단기 처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빚을 더 쉽게 내게 하는 정책은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어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결국 청년이 기대는 것은 금융이 아니라 안정적인 소득과 예측 가능한 삶이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청년이 왜 빚을 내야만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는가. 그리고 정치권은 언제까지 그 원인을 서로에게 떠넘길 것인가.
청년이 다시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어느 정권, 어느 정당을 막론하고 가장 먼저 답해야 할 과제일지 모른다. 지금의 통계는 단순한 경제 지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가 보내는 구조 신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