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인공지능(AGI)이 재구성하는 인류의 삶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기술적 능력을 추월하는 이른바 ‘범용 인공지능(AGI)’ 시대의 도래는 단순히 도구가 바뀌는 수준을 넘어 인간 삶의 정의 자체를 재구성하고 있다.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 이후 인류가 마주할 변화의 풍경을 네 가지 핵심 영역으로 스케치해보고자 한다.
첫째, 노동의 해방인가 존재의 위기인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일(Work)’의 개념 변화다. 사무직, 전문직, 창작 영역까지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면서 생계를 위해 시간을 파는 노동의 시대가 저문다. 그 결과 인간은 ‘생산자’에서 ‘감독자’ 혹은 ‘취향의 결정자’로 변모한다. 이에 따라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고, “일을 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 ‘인지 외주화’와 사고방식의 변화다. 인간의 뇌가 담당하던 논리적 추론과 기억을 AI에게 맡기게 됨에 따라 복잡한 수식 계산뿐만 아니라 글쓰기, 기획, 의사결정까지 AI의 제안을 따르는 것이 일상화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지식의 양보다는 ‘질문의 질(Prompting)’과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통찰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게 된다. 이는 계산기의 등장으로 암산 능력은 줄었지만 수학적 사고의 폭은 넓어진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셋째, 개인화된 관계와 정서적 동반자의 등장이다.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정서적 교감을나누는 파트너가 된다. 개인의 모든 데이터(성향, 과거 기록, 건강 상태)를 학습한 맞춤형 AI가 24시간 곁을 지키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비서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 간의 관계보다 AI와의 관계를 더 편안하게 느끼는 세대가 등장하며, 이는 가족의 형태나 사회적 유대감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넷째, 예술과 창의성의 ‘민주화’와 ‘가치 재정립’이다. 기술적 숙련도가 없어도 누구나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붓질을 배우지 않아도 명화를 만들고 악기 없이도 교향곡을 작곡한다. 결과적으로 ‘기술적 완성도’는 더 이상 예술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 대신 그 작품에 담긴 ‘철학’과 ‘인간만의 고유한 서사(Story)’가 예술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가 된다.
포스트 희소성 유토피아와 기술적 공산주의
이러한 시나리오는 낙관적이고 혁명적인 미래상, 즉 ‘포스트 희소성(Post-Scarcity) 유토피아’를 상정한다. 이는 현대 가속주의(Accelerationism)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트랜스휴머니즘이 결합된 형태다[^1]. ‘AI 국가자본주의’와 ‘노동 해방’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생산의 전 과정이 자동화되면 재화의 한계비용은 0에 수렴한다. 핵융합과 초고효율 태양광 에너지, 나노 제조 로봇을 통해 경제재는 공기처럼 흔해져 기본권으로서 무상 공급된다. 기존의 자본주의는 국무(State Affairs)가 아닌 생산 시스템을 운영하는 ‘관리자’로서의 국가자본주의로 진화하며, 여기서 발생한 잉여 가치는 기본소득으로 환원된다[^2].
노동이 의무에서 선택으로 변함에 따라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로 귀환한다. 마르크스가 꿈꿨던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며 저녁에는 비평하는” 삶의 기술적 완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3]. 또한 인공자궁(Ectogenesis)의 개발은 출산의 고통과 경력 단절이라는 생물학적 위험을 제거하여 인구 문제를 ‘설정 가능 값’으로 변모시킨다.
유토피아를 위한 전제 조건과 인간의 과제
그러나 이 매혹적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광범위한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
데이터와 시스템 독점: 국가나 특정 집단이 막강한 생산 수단을 독점하여 ‘디지털 독재’로 흐르는 것을 방지할 장치가 있는가? 실존적 허무주의: 고통과 결핍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이 느끼는 권태와 허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물리적 한계: 에너지와 정보는 무한할지 몰라도 토지나 환경 수용력 같은 물리적 제약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국 유토피아에서 인간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활동은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Sense-making)’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답’을 내놓지만, 그 답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완벽한 영양소의 음식을 제공받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축하’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만의 영역이다.
우리는 효율성이 없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과정의 즐거움’과 시스템의 명령이 옳은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윤리적 책임’을 고수해야 한다. 이를 포기하는 순간 인간은 유토피아의 주인이 아니라 시스템의 애완동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존재의 주권’이다. 배고픔이 해결된 세상에서 “나는 오늘 무엇을 하며 나의 존재를 증명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자유를 스스로 감당하는 것, 그것이 유토피아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다. 당신은 다가오는 이 풍요로운 미래에, 어떤 활동에 자신의 '하루'를 온전히 쓰고 싶은가? 그 선택이야말로 당신이 지켜야 할 인류의 마지막 고유 영역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