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1 김기봉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엔비디아 H200 대(對)중국 수출 승인 결정은 단순한 규제 완화 조치가 아니다. 지난 2년간 이어진 미·중 기술 전쟁의 룰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사건이자, “기술을 국익과 거래하는 방식”이 공식화됐다는 신호다. 그것도 매출의 25%를 미국 정부가 가져가는 조건부 허가라는 전례 없는 구조다.
이번 결정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수개월간 로비가 백악관을 움직였다는 점에서 더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미국 산업계가 “과도한 규제는 중국의 기술 자립을 오히려 가속한다”는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정치권과 힘겨루기를 벌인 끝에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단호했던 수출 통제가 트럼프 취임 후 ‘유연한 거래’로 바뀐 과정은, 미국의 기술 패권 전략이 고정된 원칙이 아닌 ‘협상 카드’로 전락할 가능성을 드러낸다.
문제는 이러한 급선회가 과연 미국의 장기적 기술 우위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상원에서 초당적으로 “국가안보 자살행위”라는 강경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이 단기적 매출 회복과 제조업 일자리 확대라는 실익을 얻는 대신, 중국은 엔비디아의 최신 성능 칩을 다시 손에 넣게 된다. 화웨이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자립을 가속하는 상황에서 ‘선제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 장벽이 예상보다 얇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업 논리, 안보 논리, 정치적 계산이 뒤엉킨 이번 결정을 보며 드는 질문은 분명하다.
“기술 패권 경쟁은 결국 거래로 풀 수 있는 게임인가?”
트럼프식 접근은 분명 기업에는 실리를, 미국 재정에는 수익을, 단기 시장에는 안도감을 제공했다. 그러나 세계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거래가 오히려 중국 기술 굴기의 속도를 늦출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촉발하는 방아쇠가 될 것인지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엔비디아 공급망과 메모리 생태계에 깊게 묶여 있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는 단기 호재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기술 외교가 언제든 방향을 틀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디커플링’이 다시 ‘리커플링’으로 흔들리는 이 순간, 한국 기업들이 의존도와 리스크의 균형점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기술 외교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그러나 그 문이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에게 유리한지, 지금은 아직 안개 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