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헌법을 새기기만 하면 책임이 새겨지는가

시사1 윤여진 기자 | 지난 3일 정치권에 있던 일이다. 당시 국회 본청 정문 정현관에 새겨진 헌법 구절이 햇빛 아래 드러나는 순간, 국회의장과 여섯 개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헌법 정신을 되새기겠다”고 약속했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다시 세우겠다는 상징적 선언이었고, 정치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자기 다짐이기도 했을 것이다. 헌법을 건물 벽면에 새기는 일은 그 자체로 무게감 있는 일이자 정치권의 단단한 다짐이다.

 

그러나 상징이 늘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 후퇴’라는 비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지금, 22대 국회가 과연 이러한 제막식의 의미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 묻게 된다. 민생·경제 법안은 정치적 계산 속에 표류하고, 상임위는 정쟁에 발목 잡히며, 여야 협치는 선언에만 머물고 있다.

 

헌법이 요구하는 국회의 책무,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민주주의를 단단히 하는 일’과는 한참의 거리가 느껴진다. 국회는 이번 제막식이 “민주주의를 위한 다짐”이라고 설명한다. 단 국민이 체감하는 건 다짐이 아니라 결과다.

 

정치권이 끝없는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물가·고용·지역경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누적되고 있다. 후퇴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한 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국민 앞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냉정한 평가가 쌓인 결과다.

 

헌법을 돌에 새기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헌법을 정치의 언어와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국회가 진정 비상계엄의 기억을 되새기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제 그 약속을 ‘정치의 복원’이라는 구체적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기억하겠다는 선언은 제막식에서 충분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