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인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17일 트럼프 미 대통령의 동맹국 관세 25% 인상, 국방비 5% 인상 등 요구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드릴 수 없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김상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시국회의 상임대표, 함세웅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정세현 한국통일협회 이사장 등 시민사회 원로들이 17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8층 서울클럽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명 정부를 향해 "원칙 있는 대미 협상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과 새로운 안보정책을 강행하면서 세계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영양가 없는 값비싼 동맹을 조정해야 되겠다.'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철수하겠다.' '잘못된 무역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관세를 통해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이렇게 주장하면서 이런 일들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주도해 만들어온 국제 질서를 갑자기 단기간 내 혁파하겠다고 함으로 인해 동맹국가 사이에서 심각한 반발을 일으키고 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며 "우리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만이 아니라 주한 미군 방위군 분담금을 지금의 10배 가량 해당하는 100억 불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매년 증액에 현재 10억 여불 정도 이르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저희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받아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국방비도 현재보다 두 배 높은 5% 수준으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이것도 이해할 수 없다. 항간에 미국의 무기를 많이 팔아먹기 위해 그런다고 하는데,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피력했다.
임 전 통일부장관은 "우리 정부가 미국의 불의한 요구에 말려들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우리의 국익을 수호하면서 협상을 통해 올바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성원하기 위해 오늘 성명서를 통해 발표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 정부와 미국 국민들에게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게 됐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자회견 성명을 통해 "관세 폭탄을 앞세운 미국의 강압은 자동차, 반도체, 농축산물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심지어 검역 및 수입 제한 조치의 철폐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안보 분야까지 흥정 대상으로 올려놓고 압박하고 있다"며 "미국의 무리한 국방비 증액 요구는 한국에 필요하지 않은 미국의 무기를 더 사라는 강매 행위에 지나지 않다"고 피력했다.
이날 사회 원로들은 이재명 정부를 향해 ▲주권자인 국민을 믿고 경제와 안보주권을 당당하게 지킬 것 ▲미국의 부당한 관세 협박에 굴하지 말고 원칙에 기초한 실용외교 지침대로 결기 있게 나갈 것 ▲안보 분야의 대미 협상에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견지할 것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제사회의 다른 국가들과 연대해 미국의 압박에 대처할 것 ▲주권자인 국민에게 협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적 합의를 구축하여 협상에 임할 것 등을 촉구했다.

이날 시민사회 원로 성명서는 이부영 전국비상시국회의(동아투위 위원장) 상임고문이 낭독했다.
기자회견 성명서에는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전 통일부장관), 김상근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시국회의 상임대표), 함세웅 신부(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정세현 한국통일협회 이사장(전 통일부장관), 문정인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이사장(연세대 명예교수),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등이 기자회견에 참석했고, 김중배 전 문화방송 사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황석영 작가,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등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한국 시민사회 원로 성명이다.
"이재명 정부는 원칙 있는 대미 협상에 나서라"
우리 한국 국민은 미국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오랫동안 공헌해 왔으며 유엔, 가트와 세계무역기구 등 미국이 구축해놓은 자유 국제주의 질서 덕분에 한국이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는 것을 당연히 인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주권을 짓밟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여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존립 기반인 먹고사는 문제뿐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까지 '미국 우선주의를 위한 위협과 흥정' 대상으로 삼고 나섰습니다. 약육강식이 판치는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짓을, 동맹국이자 자주 독립국인 대한민국을 상대로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원로들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젊은 세대를 위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불공정한 처사를 단호하게 거부할 것을 선언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8월 1일부터 한국산 모든 제품에 25%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이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명백하게 위반한 행위입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두 나라는 대부분의 시장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거의 모든 미국산 품목에 대해 0%대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유무역협정 미체결국과 비슷한 정도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트럼프의 관세 폭력이 단순한 무역 조치가 아니라 '동맹국가를 가난하게 만들면서 자국 이익만 챙기겠다는(Beggar Thy Neighbor policy)' 1930년대의 파행적 보호주의 행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관세 폭탄을 앞세운 미국의 강압은 자동차, 반도체, 농축산물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검역 및 수입 제한 조치의 철폐까지 강요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요구가 관철되면 대한민국 경제는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핵심 산업은 주저앉고 식량 주권은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노동자·농민의 생존권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안보 분야까지 흥정 대상으로 올려놓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으로 100억 달러(약 13조 7천억 원)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무려 올해보다 9.7배나 인상된 액수입니다. 주한미군 주둔비용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처럼 이미 두 나라 간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통해 2026년부터 매년 1조 5,192억원을 부담하기로 합의한 상태입니다. 이는 2025년 대비 8.3% 증가한 금액입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걸 무시하고 한국을 무임승차국으로 오도하는 가짜 뉴스를 공공연히 퍼뜨리면서 돈을 내지 않으면 미군 감축이나 철수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국방비 증액 요구도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한국의 방위비를 국내총생산의 5%로 올리라는 요구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신의 국방비도 국내총생산의 5%에 미치지 않는 3.5%에 그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국방비를 얼마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주권국의 결정 사항일 뿐만 아니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국방비(국내총생산의 2.3%)를 지출하는 처지입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무리한 국방비 증액 요구는 한국에 필요하지 않은 미국의 무기를 더 사라는 강매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미국은 주한미군을 한국의 방어를 위해 주둔하는 병력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지키는 군대, 즉 중국 견제를 위한 전력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대만해협 위기가 발생할 때 주한미군의 직접 개입뿐 아니라 한국군의 연루 가능성까지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의 의사는 무시하고 오로지 자국 이익을 위해 한국을 중국 견제 및 미·중 대립의 전초기지로 만들려고 하면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및 국방비의 폭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외세의 충돌로 인해 나라를 잃고 분단과 전쟁이라는 끔찍한 참화를 겪었던 한국 국민이 가장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시민들 사이에서 "방위비 분담금과 국방비 대폭 증액으로 초래될 고통과 비극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미군 없이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키겠다"라는 열망이 커질 게 분명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결정적으로 해치는 일을 자행하면서도, 한국의 주권과 자존심을 전혀 무시하고 있습니다. 주권국으로 이뤄진 국제사회는 크고 작은 국가는 있을지언정 높고 낮은 나라는 없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한국 국민은 트럼프의 변칙적인 행동을 지켜보면서, 지금의 미국이 과연 이제까지의 미국인지 강하게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주권을 존중하며 호혜 평등과 선린우호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진정한 동맹인지를 되묻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 3.1 독립선언을 통해 우리나라가 독립국이고 우리는 자주민임을 선언한 바 있는 대한 국민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강하게 규탄합니다. 아울러 '빛의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이재명 정부에게 다음 사항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을 믿고 경제와 안보주권을 당당하게 지켜낼 것을 촉구한다.
-미국의 부당한 관세 협박에 굴하지 말고 원칙에 기초한 실용외교 지침대로 결기 있게 나가야 한다.
-안보 분야의 대미 협상에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견지하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국제사회의 다른 국가들과 연대해 미국의 압박에 대처하라.
-주권자인 국민에게 협상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적 합의를 구축하여 협상에 임하라.
2025년 7월 17일
임동원(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전 통일부 장관)
김중배(전 문화방송 사장)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김상근(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시국회의 상임대표)
함세웅(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황석영(작가)
정세현(한국통일협회 이사장, 전 통일부 장관)
신인령(전 이화여대 총장)
문정인(한겨레 통일문화재단 이사장, 연세대 명예교수)
이부영(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