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7년째를 맞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직장인들이 이제 ‘갑질’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조직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급자에게 부당한 언행이나 지시를 내리는 ‘갑의 횡포’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으며 제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직장 내 괴롭힘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갑질’뿐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새로운 형태의 괴롭힘, 이른바 ‘을질’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한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실제 사례는 충격적이다. 팀 반장이자 하급자인 남성 직원 A씨는 직속 상관인 여성 상급자를 ‘나이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조직적으로 배제했다. 보고 체계를 고의로 무너뜨렸고, 동료들과 결탁해 상급자를 따돌리는 행위를 반복했다. 법원은 이를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 법원은 이를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했다. 직위보다 나이나 경력, 팀 내 권력관계가 ‘관계의 우위성’을 결정할 수 있다고 본것이다. 이는 직급이 낮더라도 조직 내에서 비공식적 권력을 가진 자가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다양한 업종에서 잇따르고 있다. 금융회사에서는 하급 직원이 팀장과 결탁해 또 다른 상급자를 비방하고 조롱한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한 공장에서는 하급자들이 상급자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상급자의 업무 지시에 불만을 품고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왜곡해 신고하거나, 고소·산재 신청을 남발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제도의 목적은 상하 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음에도, 일부는 이를 무기 삼아 조직 내 정당한 지휘 체계를 흔드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한국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소송 중 사측이 “괴롭힘이 아니다”라며 제기한 소송의 인용률이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이는 신고 중 상당수가 실제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의 기준이 여전히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업무상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행위’를 했을 때 괴롭힘으로 본다는 근로기준법의 조항은, 때로는 명확한 판단을 어렵게 한다. 특히 하급자의 집단적 따돌림이나 악의적 민원, 고의적 업무방해 등은 법적 해석상 우위 관계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이 쉽지 않다. 그 결과,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조직은 혼란을 겪는다.
공직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징계받는 공무원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괴롭힘 유형은 폭언, 성희롱 등 명백한 행위 외에도 따돌림, 부당한 지시, 모욕적 언행 등 점점 다양하고 모호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직은 ‘오피스 빌런’이라 불리는 내부 분열 세력에 의해 신뢰를 잃고 생산성을 저해당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을질’을 방치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괴롭힘은 누구에게서나 발생할 수 있으며, 누구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을의 반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비방과 모욕, 조직적 따돌림도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며, 직장 내 존중 문화를 해치는 위험한 행위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은 단순히 위계 질서를 지키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동료로서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리더의 책임은 물론, 하급자 역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성숙한 태도와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자기 권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하되, 그 권리를 방패 삼아 상대를 공격하거나 조직을 흔드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건강한 직장은 수직적 권력보다 수평적 존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을질’이라는 또 다른 괴롭힘에도 사회적 관심을 두고, 관련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해야 할 때다.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의 본질은 ‘관계의 우위’가 아니라 ‘존중의 결핍’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