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1981년 ‘세계 장애인의 해’를 기념해 우리 정부가 제정한 이 날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권리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의미 있는 날로 자리 잡아왔다.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우리가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크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이 날을 진정으로 장애인을 위한 시간으로 만들고 있는가?
몇 년 전,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인의 아버지는 지체장애를 지닌 분인데, 지역 구청으로부터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셨다고 한다. 행사에는 체육대회도 함께 진행됐고, 마무리 즈음에는 경품 추첨도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당첨자에게 제공된 선물이 20kg 쌀 포대, 라면 박스, 두루마리 휴지 묶음 등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품들이었다는 점이다. 행사장에 모인 많은 분들은 휠체어나 지팡이에 의지해 이동하거나,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이었고,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해 행사장에 오신 분들이었다. 당첨이 기쁠 법도 했지만, 정작 선물을 들고 귀가하는 일은 난감하고 큰 부담이 되어버렸다. 일부는 가족에게 연락해 차로 와달라고 요청했고, 어떤 분들은 그 자리에서 아예 포기하기도 했다.
경품 자체는 선의를 담은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담당공무원의 ‘고민없는 탁상행정’이었거나, 형식에만 치우친 ‘배려없는 소극행정’에서 비롯된 참사로 오해받기 충분했다. 담당공무원이 바뀌어 행사를 처음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다보니 경험부족으로 생긴 해프닝이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진정한 배려는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장애인의 날은 지자체의 실적 쌓기용 의례적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얼마나 장애인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사회를 만들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날이 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날은 이제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이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은 일상 속 수많은 장벽과 마주한다. 물리적인 계단도, 제도적인 벽도, 편견 어린 시선도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이 벽들은 장애인만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하고 평등한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을 위한 날을 넘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날이어야 한다. 그 누구도 앞으로의 삶에서 장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장애를 갖게되는 순간 우리가 만든 사회와 제도가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손 내밀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다가오는 4월 20일,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우리는 이 날을 누구를 위해, 어떤 의미로 기념하고 있는가? 장애인을 위한 날이 진정한 의미에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날로 거듭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