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오후 사무실 창문을 바라보니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마음이 들뜨고 뭔가의 설렘이 앞서 나도 모르게 밖을 향해 걸었다.
하얀 눈을 맞으며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강북구청소년수련원 인근 시내버스 1119번 종점(차고지)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아카데미하우스 쪽으로 직진을 했다. 백련사 입구라는 표지판을 보고 백련사로 발길을 옮겼다.
작년 여름 무더위에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던 냇가 얼음 위에도 눈이 수북이 쌓였고, 냇가 지근 거리에 있는 남루한 집 마당에는 누런 강아지가 눈을 맞으며 이곳저곳 쳐다보며 서 있었다. 눈을 밟은 소리의 인기척에 강아지는 반가운 듯 나를 쳐다보며, 가는 길을 향해 앞서 성큼 성큼 걷는 것이 아닌가.
마치 나를 인도라도 하듯, 앞서 걷는 강아지의 뒷모습을 보며 연신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주인도 아닌데 나를 반기는 모습에서 어린 시절, 시골 집에서 기르던 '작크'라는 개가 잠시 떠올랐다. 작크는 80년대 전남 고흥 시골 마을 집에서 기르던 똥개인데, 정말 착하고 명석하고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였다. 그래서인지 모든 가족이 좋아하는 개였다.
앞을 향해 걷던 강아지는 배드민턴장과 운동기구가 있는 곳까지 가더니, 돌연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이했다. 백련사를 향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성균관대학교를 설립한 김창숙 선생의 묘와 독립운동가 양일동 선생의 묘가 나왔다. 이들의 둥구스레 한 묘의 봉분은 하얀 눈으로 멋지게 장식돼 있었다.
두 독립운동가 선생의 묘에서 잠시 참배를 한 후, 가파른 길을 따라 발목까지 쌓인 눈을 밟으며 천천히 걸었다. 이때 바로 앞 정면을 응시하니, 도로에 쌓인 눈을 부지런히 치우는 사람들이 보였다.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었다.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을 쓸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스님들은 백련사 앞부터 눈을 치우며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스님들이 터 놓은 길을 따라 쉽사리 백련사 앞에 도착했다.
이곳 백련사 길은 북한산 진달래 능선 쪽으로 향하는 입구여서 평소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진달래 능선은 이곳에서 대동문으로 향하는 능선인데, 진달래꽃이 많이 핀다고 해 붙여졌다. 평소 이곳 능선에서 바라본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등의 웅장함은 정말 절경 그 자체이다.
가끔 홀로 이곳 진달래 능선을 따라 대동문까지 걷는다. 때로는 산행을 좋아한 지인들과 약속을 정해 대동문에서 만나기도 한다. 지난 12월 초, 구파발 연신내 인근에 사는 직장 후배가 나를 만나기 위해 그곳에서 출발해 대동문에서 만난 적이 있다. 산행을 통해 4시간 여, 걸어서 선배를 만나려 온 그를 보며, 나의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와 대동문에서 만나 내려온 길도 진달래 능선이었다.
1월 마지막 날 오후, 날이 저물고 눈이 펑펑 내리는 백련사 입구에서 하얀 눈 꽃이 멋지게 피었을 진달래 능선과 진달래 능선에서 바라 본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의 모습도 상상해봤다.
백련사에서 내려오는 길, 스님들이 쓸었던 길 터는 다시 눈으로 수북했고,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천천히 하행을 했다. 홀로 걷는 짧은 산행이었지만, 자연과 함께 한 사유의 멋진 시간이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