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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헬기 무사고 운항 흐뭇합니다"

[인터뷰] 40년 1만 3000시간 무사고 운항 기록한 신희식 헬리코리아 수석 기장

 

 

 

“20세초부터 60세초인 지금까지 하늘에서 비행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특히 40여 년간 무사고 비행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군경력과 사경력을 합쳐 40여 년간 1만 3000여 시간의 무사고로 하늘을 날며 산불 예방과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오대산 등 국립공원 등산로 자재 운송작업, 높은 산중턱 철탑 전선 연결 작업 등 헬기를 타고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맹활약을 했던 베테랑 조종사 신희식(62, 충남 계룡시 거주) 주식회사 헬리코리아(대전 대덕구) 운항본부 수석기장의 감회이다. 

강원도 설악산에서 비행을 마치고, 추석 연휴를 이용해 지난 5일 오후 서울에 온 신희식 수석기장을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만나 서울역 인근 한 식당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지난 53년 전남 고흥군 두원면 대전 부락에서 가난한 농부 아들로 태어나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73년 1월 23일 보병에 입대했다. 병 생활을 하다 그해 7월 23일 육군보병학교 특수 간부후보생(준위)으로 입교해 헬기(비행기)와 첫 인연을 맺게 된다. 바로 20세 때부터 군에서 비행기(헬기) 조종사로 활약을 했고, 지난 96년 9월 30일 제대까지 23년 9개월의 군경력을 쌓았다. 제대해인 12월 5일부터 현재 근무 중인 헬리코리아에 입사해, 만 17년 여째 비행을 하고 있다. 군경력을 모두 합치면 40여 년째 운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말을 이어갔고, 먼저 그에게 헬기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를 여쭤봤다. 

“70년대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집안 여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3남매 장남으로 직업을 찾아 자립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우연히 순천시립도서관 앞에서 신문 광고 ‘특수간부후보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해 합격했습니다. 당시 신문도 보기 힘든 시절이었으니 <서울신문>에 나온 광고를 보지 않았으면, 아마 다른 직업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합격을 해 놓고 96년 1월 보병에 입대해 그해 7월 육군보병학교 특수간부후보생(준위)으로 입교했고, 훈련을 마치고 특수간부(준위)로 임관해 조종사가 됐지요.” 

그는 육군항공학교에서 고정익(날개 달린 비행기, 68기), 회전익 전환(헬리콥터, 48기), 회전익 계기(18기) 등의 비행교육훈련을 받았다. 

“이 때 훈련은 힘들었지만 제가 해야 할 맡은 임무이기 때문에 열심히 배웠습니다. 헬리콥터, 날개 달린 비행기 등의 조종 기술과 원리를 연마했고, 군 배치를 받고도 정말 열심히 해 무사고로 제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신 수석기장은 군을 제대하고도, 비행의 꿈을 접지 못하고 곧바로 외국에 나가 비행훈련을 했다. 

“군대 제대 후인 96년 10월부터 한 달간 호주 멜버른 비행학교에서 교육훈련을 받았습니다. 회사 입사 직후인 그해 12월 5일 미국 LA 비행학교에서도 교육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비행교육과 다른 점이 많아 많이 배우게 됐지요. 헬리코리아로 입사해 호주와 미국의 비행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의 주 임무는 산불예방, 한국전력 산 철탑 전선 연결, 국립공원 등산로, 절 보수작업 등의 자재를 운반하거나 전선을 연결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사기업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성실성에 힘입어 여러 지자체 장들이 공로 표창을 주기도 했다. 

“민간 헬기도 국가사업에 동원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산불예방인데요. 11월부터 5월까지 산불예방기간입니다. 산림청 국가헬기로 우리나라 많은 산을 다 감당할 수 없어 민간 헬기 동원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불예방 공로로 경남도지사, 충남도지사, 전남도지사, 양양시장 등의 표창을 받았습니다. 특히 제주특별도지사에게는 한라산 유네스코 등재 공로로 표창을 받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집안 가장인 그는 아내 한청고(61)씨와 슬하에 2남 3녀를 뒀고, 현재 충남 계룡시에서 백수를 넘긴 노모(93)를 모시고 살고 있는 효자이기도 했다. 

“저는 3남매 중 장남입니다. 현재 노환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친을 비롯해 슬하에 3남매 부부와 그 밑에서 낳은 자식을 합치면 30명이 넣습니다. 저에 두 딸은 시집을 보냈고, 미혼인 두 아들과 막내딸이 결혼을 해 손자를 낳으면 가족들이 더 늘 수 있지요. 가족 잔치를 한번 하면 아이들이 많아 부쩍 거려 너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립공원 산불 진화에 나설 때가 한 국민으로서 일에 보람을 느낀다”며 “산불은 산을 좋아하는 국민들이 조금만 조심하면 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우리 국토인 국립공원 산불 진화에 나설 때, 산불 예방 조종사로써 국민의 재산을 지켜야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기 때문에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산불이 확산되기 전 조기진화에 성공했을 때, 그 기분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지요. 산 중턱 철탑 가선 연결 작업을 할 때도 위험하지만 국민들에게 전기를 제공한 일이기 때문에 신경을 써 일합니다.” 

이날 신 수석기장은 지금까지 많은 후배 비행 조종사 양성에도 힘썼다고도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곧바로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모친과 아내가 추석 준비에 바쁠 집, 충남 계룡시로 향했다. 열차를 타기 전 강원도 설악산에서 가져온 싱싱한 송이버섯, 두 송이를 나에게 건넸다. 그가 떠 난후 은은한 솔향기가 물씬 풍긴 송이버섯을 보면서 그의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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