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송태조를 저주한 도곡(陶谷)을 문인이기 때문에 중용
도곡(陶谷)은 후주시기에 한림승지로 있었다.
글을 잘 쓰는 그는 후진, 후한, 후주 3개 왕조의 신하로 있었으나, 송나라에 와서는 새 정권을 저주한 혐의를 받게 되었다.
진교병변 후 조광윤이 군 장교들의 옹위를 받으며 황위에 등극하려 할 때 후주의 문무백관들은 모두 대궐에 나와 후주 황제의 선위(禪位)의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포시(哺時)가 될 때까지 선위조서는 공표되지 않았고, 포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도곡은 옷소매에서 선위조서를 꺼내들었다.
도곡이 꾸물거리며 시간을 끈 데는 저의가 있었다. ‘포시’란 ‘신시(申時)’이며 황혼 무렵을 가리킨다.
즉, 황혼이 가까워 오면 어둠이 짙어진다는 곧 끝장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조광윤이 후주의 문무백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황제의 선위위식을 거행하려 했으나 포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조서가 당도하지 않았다.
사실상 조서는 벌써 도곡이 가지고 있었으나, 포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을 옷소매에서 꺼내들었으니 이것은 조광윤에게 명백한 저주(詛呪)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도곡과 같이 공공연히 황제의 등극에 대해 적의를 나타내는 자는 다른 정견을 가진 자로서 그 어느 왕조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며 참수되지 않으면 투옥될 것이고 그 누구도 감히 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광윤은 넓은 아량을 베풀어 도곡에 대해 어떤 보복도 하지 않고 여전히 한림학사로 있게 했다.
도곡은 이중성격을 가진 자로서 아첨하는 면이 있었다.
조광윤을 해치려 하다가 소용없으니 이제는 태도를 바꾸어 아첨하면서 글재주로 계속 관직에 있으려 했다. 도곡은 자신의 학문수준이 재상과 못지않은데 직책이 재상 아래에 있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몇 년간 계속 재상직에 오르려고 노력했다.
조광윤이 그를 재상에 등용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스스로 말문을 열었다.
「신(臣)은 오래 동안 한림학사로 있으면서 많은 노력을 했고 고생도 많이 하고 공도 많이 세웠습니다.」
그의 속셈을 훤히 꿰뚫어 본 송태조 조광윤은 기지를 발휘하여 말했다.
「듣건대 경(卿)은 글을 쓸 때 옛 사람들의 글을 많이 모방한다고 들었소. 낱말을 바꾸고 모양만 갖추는 것이니 ‘호리병’ 호리병: 호로(葫蘆)을 모방해서 ‘표주박’을 그리는 거나 뭐가 다르겠소? 그러니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할 수 없지 않겠소?」
송태조 조광윤이 자신을 무시하고 야유하는 말을 하는데 대해 도곡은 적당히 맞받을 문구를 찾지 못하고 속으로 원망스러워했다.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그는 공공연히 옥당(玉堂)의 벽에 시를 한 수 썼다.
「관직은 있을 데 있어야 써 먹을 때 없지 아니 하네. 한림의 도학사(都學士)를 비웃나니 해마다 호리병을 모방해 표주박을 그린다고.」
이는 공개적으로 황제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으나 조광윤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사람은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덕(德)도 있어야 하며, 도곡에게 모자라는 것이 바로 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도곡의 재능을 인정해 주고 그의 악의적 도발을 용서해 주었으나 덕이 부족한 만큼 제한적으로 임용했다.
그러므로 도곡이 불만스러워 해도 재상직을 맡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도곡의 불경스러운 언행에 대해서 죄를 묻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다른 정견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에 대한 송태조 조광윤의 태도이다. 말하자면 “장점을 이용하고 단점은 묵인해 준다.”는 것이다.
송태조 조광윤은 도곡의 경우와 같이 옛 왕조의 문인이 황제인 자신을 저주하고 그가 세운 왕조에 대항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그마저 존중하고 관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위풍당당한 대국이라면 사방의 인사들을 포용해야 하고 천하를 크게 다스리려면 일편단심 백성을 위해야 하며 대항하는 자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송조정에 대해 불만이 있다는 것은 조정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말이다.
이미 ‘서약비(誓約碑)’를 세워 놓은 이상 틀린 말을 해도 머리를 베지 않을 것이며 지당한 말을 했다면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 10세기의 봉건황제인 송태조 조광윤은 이미 이러한 기백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적의(敵意)를 품고 있는 자를 포용하고 심지어는 평생 신변에 비서로 두고 조서와 같은 기밀 문건을 기초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