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병권통제(兵權統制)시스템’으로 병변(兵變) 예방
병법은 이렇게 말했다. “미묘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신비스러워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고로 적의 행동은 나의 지배를 받게 된다.” 송태조 조광윤은 이러한 은폐방법을 많이 이용했다.
그는 이 병법을 이용해 전쟁에서 백전백승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교묘한 것은 군을 다스리는데 이 병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한 것이었다. 소리 없이 타인이 군을 지배할 수 없게 하고 또 군대의 강력한 전투력을 보장했던 것이다.
조광윤은 세 가지 방법으로 군을 다스렸다.
첫 번째 방법은 전쟁을 개시할 때 출정 직전에 주장(主將)을 지정하되 3개 군사기구의 책임자인 장군을 쓰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당과의 전쟁에서는 선휘남원사 겸 위성군절도사 조빈(曹彬)을 주장으로 임명했다. 후촉과의 전쟁에서도 임시로 충무절도사 왕전빈(王全斌)을 주장으로, 시위보군도지휘사 최언진은 단지 부장(副將)으로 임명했다. 북한 공격 시에는 소의절도사 이계훈(李繼勛)을 주장으로 하고 시위보군도지휘사 당진(黨進)을 부장으로 임용했다.
출정할 때마다 주장을 지정하는 이러한 ‘병권통제시스템’은 다시 한 번 병권을 분산시키는 작용을 했고, 병력을 파병하거나 그것을 장악하거나 통솔하는 권한을 분리시키는 작용을 했다. 전쟁이 끝나면 주장은 본래의 직무로 돌아가고 병사들은 소속 부대로 귀환한다.
이러한 효과적 병권통제시스템에 의해 장군들은 서로 견제하고 경거망동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정권을 효과적으로 수호하고 전제통치를 공고히 했다. 이러한 전쟁 직전에 주장(主將)을 임명하는 시스템은 조광윤의 독창적 방법으로서 송나라 이전의 역대 왕조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조광윤이 병권(보직)을 갖지 않은 고위장군이나 관리(官吏)를 전쟁의 주장으로 임명한 이러한 상호통제시스템은 실로 훌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