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열흘이 지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위기에 빠진 국가를 정상 궤도로 돌려세우고 국제사회에서의 신인도와 국격,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국정 운영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고 있다. 특히 대선 기간 공약했던 주요 정책들을 하나둘씩 현장에서 점검하며, 국민과의 약속 이행에 나서는 모습이 주목된다.
선거 때 이재명 대통령의 10대 공약 중 교육·경제·복지 분야는 노동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 처우개선과 공직문화 개선을 위해 ‘간부 모시는 날’, 불합리한 업무 지시 등 잘못된 공직 관행을 혁신하겠다고 했다.
‘간부 모시는 날’은 상급자를 위해 하급자가 의사와 무관하게 순번을 정해 상급자의 식사를 챙기는 문화다. 단순한 ‘식사 대접’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부하직원의 자율성과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는 부적절한 관행적 부패행위다. 그런데도 지금껏 수많은 공직 기관에서 조직 내 소통 강화와 경직된 조직문화 완화라는 명분으로 버젓이 관행되어 왔다.
공무원 18.1%가 간부 모시는 날 경험... 대부분 불필요한 행위로 여겨
지난해 11월,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가 전국 15만여 중앙 및 지자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부 모시는 날’ 실태조사를 했다. 설문대상은 15만4317명으로 중앙 6만4968명, 지자체 8만9349명이었다.
이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에 전체 응답자의 18.1%가 ‘간부 모시는 날’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중 중앙부처 공무원은 10.1%가 경험한 데 반해 지자체는 두 배가 넘는 23.9%가 유경험자였다.
경험 빈도를 묻는 질문엔 ‘주 1∼2회’가 41.5%로 가장 많았고 ‘월 1∼2회’가 40.0%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응답자 대부분(91%)은 ‘간부 모시는 날’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처럼 어쩔 수 없이 관행을 따르고는 있지만, 절대다수의 공무원들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간부 모시는 날’ 왜 문제인가?
‘간부 모시는 날’은 공식적인 제도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공무원 사회에 이어져 내려온 위계 중심의 조직문화로 암묵적으로 형성된 관행이다. 겉으로는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행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조직 내의 위계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거절하기 어려운 무언의 압력이 작용한다. 이러한 비공식적 강요는 단순한 내부 관습을 넘어 인권 침해와 부패의 소지가 있으며, 오늘날의 공직 윤리와 직장 내 인권 기준에 비춰볼 때 분명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이러한 관행은 구성원의 자율성을 침해한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상급자에 대한 예우라는 명목 하에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업무와 무관한 사적인 요구에 응하는 행위는 본래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강제 노동의 성격을 띠게 되며, 이는 근로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
둘째, 평등권 침해의 문제도 존재한다. 특정 직급이나 연령에 따라 역할이 정해지고, 특히 하위직급자나 신입 직원에게 반복적으로 특정 업무나 의전 역할을 맡기는 구조는 조직 내 차별을 조장한다. 이는 직장 내 평등한 대우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민주적 조직 운영에 역행하는 요소다.
셋째, 반복적인 직무 외 강요는 인격권과 노동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업무시간 외에 이뤄지는 지속적인 요구는 근로기준법 및 공무원 복무규정에 위배될 수 있으며, 개인의 자존감과 직업적 존엄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무원의 경우, 공직자로서의 인권 감수성과 직무 윤리를 훼손하는 문제로도 볼 수 있다.
넷째, 2019년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따르면, 업무와 무관하거나 적정 범위를 넘는 지시나 요구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간주될 수 있다. 공무원에게도 공무원 행동강령과 인권 보호 지침이 적용되므로, 유사한 형태의 비공식 강요도 법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행이 지속될 경우, 조직문화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직적 위계에 기반한 분위기는 민주적 소통보다는 복종을 유도하며, MZ세대 등 새로운 세대와의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5년 미만 MZ공무원 54.6%가 이직...경직된 조직문화와 수직적 소통방식이 원인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5년 미만 공무원 54.6%가 이직 의향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가 ‘낮은 보수’라고 답한 비율이 77%를 넘어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MZ세대들은 자기 효능감과 공정성, 성장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지금의 공무원조직은 경직된 문화와 수직적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정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5년 내 조기 퇴직한 MZ 공무원은 2023년 1만3천여명으로, 2019년의 약 6천 600명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퇴직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는 낮은 보수, 과중한 업무 부담, 세대 간 갈등, 경직된 조직문화 등이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간부 모시는 날’과 같은 비공식적이면서도 강제적인 관행 역시 MZ세대 공무원들의 실망감을 키우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낮은 보수만으로도 공직의 매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위계적 관행과 갑질 문화는 세대 간 괴리와 소속감 상실을 심화시키며, 결국 많은 신입 공무원들이 공직을 조기에 떠나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간부 모시는 날’과 같은 비공식 관행은 단순한 전통이나 예우 차원이 아닌, 인권과 조직윤리의 관점에서 재고되어야 할 문제이다. 건강한 조직문화는 자율과 존중, 평등을 기반으로 형성되어야 하며, 이는 공직사회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