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선남후북(先南後北)’의 천하통일 전략(23)

제3절 각국 평정 후 완벽한 사후관리

3. 후촉왕 맹창의 노모를 국모(國母)에 봉하다

 

965년(태조6) 초, 후촉왕 맹창(孟昶)은 그의 남동생 맹인지(孟仁贄)를 변경(汴京)에 보내 투항서를 올리도록 했다.

그는 투항서에서 12세에 즉위하여 정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세월만 흘러갔다는 것, 진심으로 항복하며 노모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등을 언급하면서 구구절절 애절한 심경을 고백했다.

조광윤은 이를 읽으면서 동정심이 생겼고 맹창의 노모가 아직 살아있다는 말에는 더욱 불쌍한 생각이 들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위로의 조서를 보냈다.

「그대는 스스로 다복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이것으로써 과거 잘못을 상쇄해 주겠소. 짐(朕)은 언약한 것을 지킬 것이니 심려를 놓기 바라오.」

후촉에서 조광윤의 뜻을 전달 받은 맹창은 마음 놓고 짐을 꾸렸다. 그가 가족을 데리고 배로 장강에서 남하하여 강릉에 도착했을 때, 조광윤은 벌써 사람을 파견해 마차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맹창 일행은 배에서 내려 마차를 타고 북상하여 5월 하순에 변경에 도착했다.

조광윤은 투항한 맹창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검교태사(檢校太師) 겸 중서령(中書令), 진국공(秦國公)에 봉하고, 그의 노모 이씨(李氏)는 국모(國母)로 존대하고 가마를 타고 입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조광윤이 이씨에게 말했다.
「국모께서 먼 길을 떠나 변경(汴京)에 오셨는데 비록 관저에 모셨으나 미흡한데가 있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국모께서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궁내에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후촉의 향토가 그립다면 날짜를 정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씨가 말했다.
「후촉은 그립지 않소이다. 신첩은 본래 태원부(太原府) 병주(幷州) 사람이었는데 고향을 떠난 지 근 40년이 되었습니다. 신첩의 소망은 장차 병주에 가는 것입니다.」
태원(太原)은 아직 북한이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조광윤이 약속했다.
「유균(劉筠)을 평정하면 국모의 소원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4. 항복한 남한왕(南漢王)의 술잔을 빼앗아 마시다

 

남한왕 유창(劉鋹)은 소인배들에게 정사를 맡기고, 무고한 백성들을 삶고 살을 도려내는 등의 가혹한 형벌을 가했으며, 사치하고 음란한 생활을 하면서 재물을 물 쓰듯 탕진했다. 조광윤은 유창의 통치 하에 있는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면서 슬프게 탄식했다.
「내가 나서서 이곳 백성을 구해내야겠다.」

그는 반미에게 명해 유창을 토벌하고 남한정권을 멸망시켰다. 남한을 함락한 후 반미는 유창과 종실, 관리들을 변경(汴京)으로 압송했다. 조광윤은 특별히 반미를 위해 포로인도식을 거행했다.

이 의식 중에 조광윤은 유창에게 몇 번씩이나 반복해 백성들에게 가혹한 형벌을 가하고 황음무도하며 국고에 불을 지른 등 죄를 물어 질책했다.

그런데 유창은 태연하게 변명했다.
「저는 16세에 왕위를 이어 받았으나, 공징추(龔澄樞), 이탁(李托) 등 선조(先朝)의 옛 신하들이 모든 일을 주관했기 때문에 제대로 왕의 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남한에 있을 때 공징추 등이 군주였지 저는 사실은 신하와 다름없었나이다.」

이리하여 조광윤은 대리경(大理卿) 고계중(高繼中)에게 명해 공징추 등에 대해 엄하게 심문하도록 했다. 갖가지 간악한 불법사실이 들어난 후 천추문 밖에서 공징추 등을 참수했다. 유창에 대해서는 왕이었다는 점을 참작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고, ‘은사후(恩赦侯)’라는 별칭을 달아주었다.

 

어느 날 조광윤은 강무지(講武池)를 시찰했다. 다른 관리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유창이 제일 먼저 와서 알현했다. 조광윤은 그에게 술 한 잔을 따라주었다. 술잔을 받아들고 대경실색한 유창은 혹시 술에 독이 들어있지 않나 의심하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제가 선조의 업을 이어받아 조정과 저항하는 바람에 황군이 정벌에 나서게 했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옵니다. 폐하께서 이미 신(臣)을 사면해 주셨기 때문에 신은 변경의 백성이 되어 종신토록 폐하의 은혜를 받고자 했습니다. 오늘 액주(厄酒)를 받았으니 신은 감히 마실 수 없사옵니다.」

본래 유창은 남한왕으로 있을 때 걸핏하면 독주로 신하들을 죽여 왔기 때문에 조광윤도 독주로 그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송태조 조광윤이 그의 마음을 읽고 말했다.
「짐(朕)은 그대를 진심으로 대하고자 하는데, 어찌 암살을 시도하겠는가?」
말을 마치자 그는 유창이 들고 있는 술잔을 빼앗아 쭉 들이켰다.